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 / 조슈아 선교사

코로나로 시작하고 끝나는 2020년

코로나로 시작했던 2020년은 결국 코로나로 끝났다. 새해 역시 코로나로 시작되었지만 2021년은 코로나가 끝나는 해로 역사에 기록되기를 소망한다. 지구 위 한 지점에서 한 사람에게 발병한 작은 바이러스 하나가 온 세상 모든 사람들의 일상을 변화시켰다. 일터와 학교, 가정과 교회에서 우리는 전에 없던 1년을 보냈다. 지금껏 중요하다고 여겼던 것들이 폐기가 되었고 새로운 방식과 제품들이 각광을 받았다. 어려운 시기에 더 이기적으로 되어버리는 인간의 추태를 확인하면서도 여전히 사람들은 희망의 끈을 붙들고 있다.

극적인 변화 가운데 인류의 적응

사람들은 극적인 변화에도 적응해 왔고 어떤 면에서는 지속적으로 발전해 왔다. 전쟁이 그치고 나면 살아남은 사람들은 잔해 속에서도 도시를 재건하고 문명을 발전시켰다. 공황과 불황과 금융위기를 겪어도 여전히 마트에는 상품들이 넘친다. 전 세계적인 바이러스의 창궐을 겪으면서도 주식 시장은 과열되고 부동산은 자고 일어나면 또 올라 있다. 버블이라는 경고는 들리지 않는다. 망할 사람은 망해도 버는 사람은 번다. 누군가 죽어도 누군가는 산다. 두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갖고 산다. 그렇게 개인적인 인생도, 인류의 문명도 결국 언젠가는 터지는 거품일 뿐이다.

세계 종말은 기정사실

세상은 더욱 추해질 것이고 어두워질 것이다. 삶은 더 팍팍해지고 짐은 더 무거워질 것이다. 일시적인 상승이 있을 수는 있지만 결국은 추락하고 만다. 이륙한 비행기가 지금은 하늘을 날며 오르락내리락 하지만 영원히 공중에 떠 있을 수는 없다. 동력을 잃어갈수록 불안과 혼란은 가중될 것이다. 살기 위한 경쟁과 다툼이 끊임없이 늘어날 것이다. 개발되고 있는 백신들과 치료제들로 코로나바이러스가 잠잠해질 수 있겠지만 마지막 때를 향해 돌진하는 변화의 경쟁은 이제 브레이크 없이 폭주하게 될 것이다. 세계의 종말은 기정사실이다.

혼란과 불확실성

종말은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도피는 답이 될 수 없다. 종말의 지연도 답이 아니다. 사람들은 획기적이고 창의적인 방법들을 강구하고 있다. 지구를 떠나 우주에 정거장을 만들고 화성에 거주지를 만든다 해도 종말을 피할 수 없다. 의학과 기술로 노화가 억제되고 생명이 연장된다 해도 결국은 끝이 온다. 마지막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 뿐 어떤 모습으로 언제 닥칠지는 명확히 알 수 없다. 코로나를 1년간 겪었지만 언제 어떻게 마무리될지는 모르겠다. 어리둥절한 가운데 막연한 희망만 바라본다. 발 빠르게 움직여야 할 것 같다. 그런데 어디로 움직여야 하는 걸까? 본질적인 문제는 코로나의 종식이 아니라 인생의 방향이다. 혼란과 불확실성에 굴복해서는 안 된다. 두려움과 염려에 눈이 멀어 생존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비전보다 우선순위가 되어서는 안 된다.

방어자인가? 정복자인가?

우리는 수비하며 성을 지키는 자가 아니라 정복자보다 더한 자들(more than conquerors) 이다. 스스로를 누구라고 생각하고 있는지에 따라 문제에 대한 인식과 태도가 달라진다. 문제를 어떻게 인식하는 것보다 더 앞선 것이 우리의 정체성이다. 우리의 정체성은 환경에 따라 달라지지 않는다. 우리가 누구인지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그 사람이지, 세상이 판단하는 그 어떤 누구도 아니다. 우리가 싸워 지켜야 할 것은 우리의 정체성이다. 우리는 부름 받은 사람들이다. 마지막 때에 이 땅에 이루어야 할 사명을 받은 사람들이다. 존재의 이유와 목적이 분명한 사람들이다. Mission을 수행하는 사람들에게 생존은 고민거리가 아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군인보다 민간인 사상자가 훨씬 더 많다. 군대는 민간인을 지키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군대는 적을 이기기 위해 존재한다.

목표는 생존이 아니다.

Mission을 잃어버리면 생존이 중요해진다.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을 마주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생각해 보자. 그들은 거인들의 존재에 집중했고 그들 자신과 자녀들의 생존이 더욱 중요해졌다. 집중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 안에 있는 우리의 역할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분의 의지이며, 그 뜻을 방해할 수 있는 것은 이 땅에 아무것도 없다. “나도 남의 수하에 든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병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하면 가고 저더럭 오라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하면 하나이다.”(눅 7:8) 백부장은 권세가 작동되는 방식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백부장의 명령이다. 곧 황제로부터 위임받은 권세를 사용하는 통치 행위였다. 자신에게 주어진 권세의 근원을 이해하고 적절히 사용하는 것을 예수님께서는 놀라운 믿음이라 칭찬하셨다. 우리는 믿음으로 다스리는 사람들이다. 왕같은 제사장이며, 왕 노릇하는 사람들이다. 세상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날 것을 기대하고 있다(롬 8:19).

혼란 속의 기회

전망이 어둡고 불안한 것은 우리의 시각일 뿐이다. 기존의 체계와 기반이 흔들리는 것은 위기이면서 동시에 기회이다. “터가 무너지면 의인은 무엇을 하랴”(시 11:3). 혼란한 상황에서 악인들이 득세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어두운 곳에 빛이 빛나고, 더러운 곳에 거룩함이 두드러진다.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히 10:38). 우리는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이다. 뒤로 물러날 계획은 생각하지 말자. 눈을 들어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자. 골짜기마다 돋워지면 언덕마다 낮아질 것이다. 고르지 않았던 곳이 평탄하게 되고 험한 땅이 평지가 될 것이다(사40:4). 지금까지 갈 수 없다고 한 나라들에 가게 될 것이며, 듣지 않던 사람들이 듣게 될 것이다. 복음은 결국 모든 민족에게, 땅끝까지 전해질 것이다. 약속은 성취된다.

먼저 구할 것

2021년, 무엇보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자. 문제 속에서 발버둥 친다고 빠져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것을 믿음으로 어느 때보다 더 간절히 구하자. 의의 열매를 맺는 일에 내 시간과 재정과 재능을 심자. 심는 자에게 주인의 공급이 있다. 더 많이 심고, 더 열심히 심자. 내 주변에 심고, 먼 곳에 심자. 갈 수 있는 곳에는 가고, 갈 수 없는 곳에는 보내자. 때가 이르면 심은 것을 거두게 될 것이다.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고후 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