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 통도동동’ 빈 바구니에 대추가 담기는 소리가 마치 아이가 조그만 북을 치는 소리처럼 경쾌하다. 곧 가득 채워져 ‘두두두둥’ 큰 바스켓에 옮겨질 것이다. 시기상 한국 돌아가기 전 대추 따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처음 예상과는 달리 작년보다 대추들이 빨리 익어가는 덕분에 감사하게도 신나게 대추를 따고 있다. 이제 제법 손에 익고 속도가 붙어 금세 대추 따기 무아지경에 빠진다. 때로는 나지막이 방언 기도를 하며, 때로는 찬양을 부르며… 정말 아무 생각 없이 대추를 담기에 바쁘다. 여기 킹살렘 훈련원에서 지낸지 꼭 한 달이 지났다. 세상과 떨어져 하나님을 깊이 만나기 너무나 좋은 장소라는 미국 본부 이수현 선교사님 말대로 정말 이곳에서 다양한 색깔의 풍성한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을 만났다.
포도밭에서의 은혜
내가 처음 받은 임무는 포도 따기였다. 건포도와 포도주를 만드는 종류인 칵테일 포도는 크기는 작지만 달달하고 상큼한 매력이 있다. 손질 후 세척된 오색 빛깔 포도는 마치 예쁜 구슬 같다. 포도밭을 들어설 때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요15:5) 하신 말씀을 떠올리며 주님 안에 거함, 주님이 내 안에 거함에 대해 묵상하였다. 포도를 따러 다녀올 때마다 놀랍고 신났던 것은 ‘이젠 다 따서 없겠지’ 했던 곳에서 싱싱한 포도들을 계속 발견한 것이다. 분명 어제 다 땄는데 또 한 아름 발견할 때면 포도 따는 재미에 푹 빠진 나를 위해 하나님이 밤새 붙여 놓으신 것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오늘도 이만큼 또 땄어요. 그런데 더 있어요. 또 내일 더 딸 수 있어요.”라고 말씀드릴 때마다 내 마음엔 기쁨으로 가득 찼다. 주님께 열매를 드릴 그날에 “주님 여기요. 저기도 있어요. 또 여기도요.” 이젠 끝났다고 생각하는 그곳에서 포도밭에서 누렸던 은혜처럼 주님께 “여기 드릴 것이 더 있다”고 그렇게 말씀드릴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고 고백 드렸다.
선교 대추를 따면서
처음엔 익은 것이 별로 없다가 어느 순간부터 빨갛게 익어가는 것들이 많아져 도구를 사용하게 되니 대추 따기의 신세계가 열렸다. 나의 키의 한계와 상관없이 나는 가장 높은 곳에서 익어가는 대추도 얼마든지 손쉽게 딸 수 있었다. 그리고 일석이조! 내가 타겟한 대추가 떨어지면서 다른 익은 대추까지 떨어뜨리는 효과도 얻었다. 그러면서 더 많은 달란트와 은사를 사모하게 되었다. 지금 내게 주어진 것에만 익숙했는데, 성령님과 함께 그분이 부어주시는 더 큰 은사를 사모하고 계발하고 영혼구원을 위해 사용한다면 얼마나 많은 수확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또 하나 배운 것은 관점을 새롭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앞에서만 보면 익은 것 같지 않은 대추도 옆에서 혹은 뒤에서 보면 빨갛게 잘 익은 것을 보았다. 또 도구를 사용하여 떨어진 대추를 줍고 일어나는 순간 나뭇잎에 가려져 미처 보지 못했던 잘 익은 대추들을 무더기로 발견한다. 겉에 보이는 것을 다 따고 나무 속에 들어가 보면 잘 익은 대추를 또 한 아름 바구니에 담을 수 있다. 내가 어디를 보느냐에 따라 많은 열매를 거둘 수도, 그냥 지나칠 수도 있다는 사실이 크게 다가왔다.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는 우리에게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하신 주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주님, 모든 것을 보시는 주님의 관점으로, 주님의 마음으로 볼 수 있게 해주세요.” 대추를 따며 드린 기도였다.
나의 떨기나무 앞에서 만나는 하나님
우리 가족이 머물던 숙소 바로 앞에는 놀이터가 있고 그 앞에는 곧게 뻗은 소나무가 서 있다. 한밤중 깨어 밤하늘의 별을 보러 나왔다가 짙은 어둠에서도 선명한 그 나무의 위엄을 보는 순간 모세의 떨기나무가 생각났다. 마치 하나님께서 그곳에 계셔 내게 ‘신을 벗으라’ 하시는 것 같았다. 그래서 가만히 신발을 벗고 그 앞에서 기도를 드렸다. 정말 고요한 밤, 별빛 가득한 밤하늘 아래 나와 주님만 있는 그 시간, 주님의 위엄에 압도당하여 경배를 드리기도 하고, 속마음 깊은 것을 눈물 흘리며 아뢰기도 하고, 잔잔히 불어오는 바람에 주님의 포근함을 느끼다가도, 어느 날은 그 주님마저 침묵하시며 계시지 않은 것 같은 적막함에 외롭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이주열 선교사님께서 해주신 예언 기도 중 “I see you, I see you.”라고 말씀하신 부분이 있었는데, 그 말씀을 듣는 순간 한밤중 나무 앞에서의 시간이 떠올랐다. 주님은 나의 모든 순간 함께 계셨고, 모든 순간의 나를 보고 계셨으며, 모든 순간의 나를 알고 계셨다. 그 사실을 친절하게 다시 상기 시켜 주신 주님께 너무나 감사하고 큰 위로를 받았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 때 보이는 것은 이전과 같지 않으리라.”
내가 좋아하는 문구 중에 하나다. 이 시간들을 통해 나는 하나님께서 컴미션 식구들을 더 사랑하게 되고 알게 되는 은혜를 누렸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이 여행이 가능하도록 처음부터 끝까지 보이지 않게 수고해 준 정민경 선교사님, LA 가이드를 맡아주신 이수현 & 김은지 선교사님, 아이들을 따뜻이 품어 주신 전영배 장로님, 미국 본부 식구들이 얼마나 부지런히 탁월하게 본인의 임무들을 충실하게 또 즐겁게 협력하면서 해내는지 보았다. 특히 우리 가정이 한국 본부에 입소하기 전 미국으로 귀임했던 하규, 인규네와 농장에서 함께 교제할 수 있는 시간을 보내면서 내가 놓쳤다고 아쉬워했던 것들을 세심히 채워주시는 주님의 은혜를 누렸다.
이 여행을 함께 시작했던 존재만으로 함께하는 즐거움을 선사하시는 박숙희 선교사님, 때마다 우리의 안전한 발과 이보다 완벽할 수 없는 가이드가 되어주신 박성재 선교사님, 농장에서의 은혜를 사모하도록 그간의 은혜들을 글과 말로 전해주셨던, 우리도 그 일들을 잘 할 수 있도록 친절하게 알려주신 농장 4년 차 프로 선배 박주희 선교사님, 각각의 아이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시고 격려해 주신 탁월한 어린이 청소년 사역자 김나현 선교사님과의 특별한 교제에 감사했다.
특히 주일 오후에는 박성재 선교사님과 노숙자 전도 사역을 통해 한 영혼을 향한 하나님의 관심과 사랑을 다시 한번 깨닫고, 노방 전도에 대한 도전을 받고 한국에서 어떻게 이어서 해나갈까를 고민하게 되었다. 이주열 & 이지희 선교사님의 담대하게 복음을 전할 때 하나님께서 손수 이어 주시는 관계와 열어주시는 기회들에 대한 간증을 들으며 도전을 받고, 함께 뜨겁게 기도하면서 아이들도, 나도 이선교사님 부부 안에 있는 열정의 전이를 경험하고 많은 세움을 받았다. 무엇보다 바울처럼 살다가 천국으로 먼저 입성하신 정바울 선교사님의 소식을 들으며 마침 읽고 있었던 책에 실렸던 글귀 “내가 죽은 후 내 이름이 거론된다면, 나는 칭송이 아닌 열정, 박수가 아닌 행동을 불러 일으키고 싶다. (더치 쉬츠)” 그 글귀 그대로 살다 가신 정바울 선교사님과 한 가족, 한 군대로 부름 받은 그 분의 동지라는 사실에 부끄럽지 않게 살겠다는 다짐을 드렸다.
장인(匠人) 이재환 & 이순애 선교사님
그동안 오가는 인편으로 때마다 보내주셨던 대추를 그저 맛있게 냠냠냠 오물오물 먹었던 내 모습이 떠올라 너무나 죄송해졌다. 크고 예쁘게 잘 말려진 대추가 내게로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수고가 있었는지 직접 보게 되고 알게 되니 말이다. 특히 근처에서 대추 농장을 하시는 분들도 이런 것을 왜 상품으로 하지 않느냐고 할 정도로 아주 작은 흠이 있는 것도 가차없이 下品으로 분류하신다.
장인은 명품만 만든다. 명품을 만드는 데에는 재료, 만드는 방법, 마지막 검수 납품, 그 어떤 것도 타협하지 않는다. 선교라는 이름으로 성도님들에게 싸게 팔고 싶지 않다는 그 신념 하나가 당장은 손해를 보는 것 같고 당장은 영리하지 못한 결과를 낳는 것 같아도 결국에는 더 좋은 품질을 인정받고 신뢰를 받게 되어 좋은 소문이 나 있다고 한다.
감비아로 첫발을 내딛은 그 날부터 지금까지 선교의 장인으로 살아오시는 두 분은 그 무엇을 하든지 탁월하게 하고 계신다. 그것이 나로 하여금 정신을 바짝 차리게 만들었다. 그 무엇을 하든, 어떤 일이든 탁월하게 하라. 주님의 이름으로! 선교의 이름으로! 아주 조그만 흠이 생긴 건 아쉬운 마음에 상품 쪽에 남겨놓다가 나도 두 분의 확고한 신념을 철저하게 따라가고 싶다는 마음에 과감히 “새 먹은 쪽”에 분류하니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뿌듯함과 자부심이 일어남을 경험했다.
우리 Comer는 원체 쉬운 길을 가지 않는 사람들이지 않는가? 당장 눈앞의 결실을 따라가는 사람들이 아니지 않는가? 선교 역사상 오랜 세월 외면당해 온 미전도종족 선교를 향해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눈물로 씨를 뿌리며 기쁨으로 거둘 날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아닌가? 주님이 그런 우리의 중심을 보시고 기대하지 못하고 상상하지 못했던 열매까지 주리시리라는 감동이 들면서 선교지를 가기 전 주셨던 말씀이 다시금 떠올랐다. “보라 네가 알지 못하는 나라를 네가 부를 것이며 너를 알지 못하는 나라가 네게로 달려올 것은 여호와 네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로 말미암음이니라 이는 그가 너를 영화롭게 하였느니라”(사55:5)
다시 훈련생으로
후보생 시절부터 지금까지 내게 아쉬움으로 남았던 것이 하나 있다면 바로 이재환 & 이순애 선교사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거나 공동체 생활을 할 기회가 없었다는 것이다. 이번에 두 분과 한 달을 함께 지내면서 그저 함께 하는 즐거움에 마냥 행복했다. 아침마다 그날 묵상하는 성경 장의 ‘제목 짓기’를 통해 아이들과 함께 최고의 논술 교육을 받았고, 식사 때마다, 일하는 중간중간 나누어 주시는 재미있는 이야기부터 삶의 경험의 지혜, 인사이트까지… 선교사님의 삶을 통해 깨닫게 해주시는 은혜들을 누렸다. ‘하나님, 진작에 이런 시간들이 제게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생각해 보았다. 두 분 선교사님과 함께 산책하고, 닭 모이를 주거나 닭을 잡아 손질하는 것도 해 보았다. 이렇게 농장의 크고 작은 일들을 도와드리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욱결하채를 보면서 ‘아…, 난 지금 아이들과 함께 이 특권을 누리고 있구나’, 조기 선교사 교육을 받는 우리 아이들과 함께여서 더 기쁘고 감사하게 되었다.
이제까지 나는 육체 노동이라는 것을 모르고 살았다. 가사 노동, 육아 노동 말고 순수하게 땀을 흘려 무언가를 결실하는 것 말이다. 이곳에서 마치 다시 훈련생이 되어 정직한 노동, 일하는 지혜, 함께 하는 즐거움, 관계 속에서 배우며 인격을 다져가는 것 모두 새롭게 배우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지금도 내 머릿속 잔상으로 선명하게 남은 그림은 대추를 널어놓는 판을 지지할 벽돌을 옮기는 작업을 할 때, 이재환 선교사님이 그 무거운 벽돌을 들고 묵묵히 가장 먼 곳으로 가시는 모습이었다. 우리는 편하게 가까운 곳에 놓으라고 하시고 본인이 가장 멀리까지 가셨다. 나의 리더는 그러하신 분이다. 본인이 가장 힘이 많이 드는 곳으로, 가장 어려운 곳으로 기꺼이 가시는 분이다. ‘
“주께서 주신 동산에 땀 흘리며 씨를 뿌리며 내 모든 삶을 드리리 날 사랑하시는 내 주님께…”
농장에서 제일 많이 부른 찬양이다. 나는 지금까지 가사의 의미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이 찬양을 불렀다. 이 찬양의 가사처럼 주님께서 나를 있게 하시는 그 동산, 땅 끝에서 주님께 기쁨의 열매들을 가득 드리기 위해, 영광의 주님을 맞이하기 위해 땀 흘리며 씨를 뿌리며 나의 모든 것을 드리겠노라고 오늘도 기도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