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성 시대, 선교사의 사명 / 이재환 선교사

마 24장 14절, M2414를 피부로 느끼는 선교 완성의 시대

우리는 불확실성 시대에 살고 있다. 누구도 펜데믹을 일으킨 코로나바이러스를 예측하지 못했다. 코로나바이러스뿐만 아니라 무섭도록 거대하게 밀려오는 천재지변과 그치지 않는 전쟁의 소용돌이 앞에 무력해 있다. 매일 세계 뉴스를 들어보면 세상의 신음소리가 하늘을 찌르는 듯하다. 머지않아 지구가 핵폭탄으로 폭삭 꺼져 버리는 날이 오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엄습할 때도 있다. 21세기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하는 괴변이 일어날 것을 누가 알았겠는가? 한국의 혼란한 정치 상황을 보거나 경제 강국이며 기술 대국이었던 일본이 서서히 약화되는 모습을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더구나 디지털 시대의 도래가 가져오는 불확실한 미래를 누가 자신 있게 예측할 수 있겠는가? 많은 사람들은 세기적 재앙을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몰라 두려워하고 있다. 한 마디로 혼란과 혼돈의 시대라고 부를 수 있다. 그래서 이 세대를 <불확실성 시대>라고 말하는 것 같다. 불확실성은 우리의 마음을 불안하게 하고 두려워하게 하여 걱정스럽게 만든다. 한편 이러한 상황이 타성화되어 별일이 없겠지라고 스스로 위로하며 불확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는 불확실성 시대에 불확실한 삶을 살지 않는다.

삶을 영유하는 것이 살얼음을 딛는 것 같다 할지라도 우리의 삶은 결코 불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를 믿고 기대하는 우리는 더 확실한 시대를 내다 볼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선지자적 삶을 살라고 말씀하셨다. 미래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라는 것이다. 세상이 불확실성으로 가득 차오를 때, 우리의 미래는 더욱 가까이 와 있다. 시편 11편 3절에서 “세상은 이미 터가 무너지고 망가졌다.”고 했다. 이 때에 살길은 바로 <The Great Reset>이다. 새로 시작해야 한다. 그래야 돌파구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의 노력으로는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다.

유일한 미래는 이다.

우리는 <불확실성 시대>와 함께 <비상 시대>에 살고 있다. 디지털화된 세상이 바로 눈앞으로 다가왔다. 종이 화폐가 아닌 디지털 화폐가 사용될 것이며, 사람이 아닌 기계가 대신 일을 할 것이다. 사회는 점점 기계화되어 갈 것이다. 입을 열지 않고 가까이 다가가지 않아야 하며, 무리들이 있는 곳에는 동참하지 않는 사회가 될 것이다. 인간과 인간의 사이를 벌려 놓는 고립적, 독립적인 사회가 형성되어 갈 것이다.

기독교 국가들이 앞장서서 창조의 질서를 거스르는 낙태와 동성애 법을 허용하고 있다. 이로 인해 증가하는 정신적 혼란을 야기하는 질병들이 세상을 잠식하고 있다. 이것이 민주주의의 자유권이 발전되는 것이라고 외친다. 불법이 만연하는 곳에서 성령의 생명의 법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더욱 고독할 수밖에 없다. 더 큰 믿음의 비밀을 간직해야 세상을 이길 수 있다.

IT 발전과 함께 유행하는

머지않아 IT에 익숙하지 않으면 생존이 어렵게 될 것이다. 최근 이러한 위험한 미래를 내다보는 사람들이 인간화 복귀를 위해 <인문학>을 강조하고 있다. <인문학>이 IT 시대의 희망이 되어 유행을 타고 있는 중이다. 세상의 모든 시스템은 사회적 Platform으로 빌딩화 되어 갈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의 희망은 선교를 통해 다가올 하나님 나라이다. 그 나라가 매우 가까이 다가왔다. 이를 기대하며 믿음으로 도전해야 한다. 그러나 이 선교적 도전은 매우 비현실적 사역이다. 그러나 이 비현실적 방법이 아니면 이 땅에 확신적 미래가 존재할 수 없다. 그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많은 교회들이 이 도전을 꺼려한다. 선교가 어렵기 때문이다.

선교는 불법이다.

240개가 넘는 나라 중 선교를 합법화하여 기쁜 마음으로 선교사에게 비자를 주는 나라는 많지 않다. 90% 이상의 국가가 선교 사역을 합법화하지 않는다. 기독교적 절대적 윤리관을 가진 선교사는 이슬람권 사역이나 대부분의 나라에서 발을 붙일 수가 없다. 선교사는 어떤 나라의 법보다 우선하는 생명의 성령의 법을 믿기에 이 불법적 환경 속에서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한 사역을 이루어 가야 한다. 세상의 법은 좁은 길을 막고 멸망으로 들어가는 넓은 길을 열어놓고 있기 때문이다.

선교사의 신분이 드러나면 그냥 추방을 당하게 되는 현실

절대 윤리를 어떻게 합리화해야 할지 고민할 수밖에 없는 현장이 바로 선교지이다. 그러므로 선교사의 안전은 늘 위협을 받는다. 인사이더 운동이 선교사들에게 가능한 것이냐는 질문은 매우 위험하다. 많은 국가에서는 선교사의 신분을 알고 있으나 잠시 눈 감아 주고 추방할 적시를 기다리고 있는 곳도 있다. 그러므로 선교사는 추방이라는 현실 앞에서 늘 준비하고 살아야 한다. 예수님 시대 유대 땅도 선교는 불법이었다. 로마에서도 선교는 당연히 불법이었다. 그러나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의 시민권을 갖고 있는 우리에게 있어 복음 전파는 매우 합법적이다.

선교사에게 안전은 없다.

선교사는 24시간 쉼 없이 영적으로 육적으로 공격을 당하고 있다. 사탄이 우는 사자처럼 선교사를 공격하고 침략하고 있다. 펜데믹 기간에도 많은 선교사가 우리보다 먼저 본향에 입성했다. 북한에는 6명의 선교사가 억류되어 있다. 여러 곳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죄인이 되어 감옥에서 육신적 고통을 당하고 있다. 순교라는 극단적 역사가 일어나는 곳이 바로 이런 전쟁터이기 때문이다.

가명을 쓰고 신분을 감추어야 하는 선교 현실

“땅끝까지 선교하라.”고 했던 성경의 시대에는 비자가 필요하지 않았다. 그 당시에는 다른 나라로 이동할 때, 비자를 요구하지 않았다. 이름을 가명으로 사용해야 하고 자신의 신분을 감추어야 하는 선교 현실이 선교사를 움츠리게 한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복음 전파의 당위성 때문에 뱀처럼 지혜롭게 일해야 한다. 추방을 당할 경우에는 기쁜 마음으로 옷의 먼지를 털며 떠나야 할 것이다. 여리고를 정탐하던 스파이들이 바로 선교사였다. 가나안 복지를 정탐하던 12지파의 12명 정탐군들도 다 선교사들이었다. 선교사야말로 악한 세상 안에서 자신을 숨기고 싸우는 용사들이다.

선교는 불가능에 도전하는 전투이다.

언어를 배우는 일이 쉽지 않다. 문화를 초월하는 일이 쉽지 않다. 남의 나라 땅에 뿌리를 내리는 일이 쉽지 않다. 선교지에서 자녀를 키우는 일이 쉽지 않다.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일이 쉽지 않다. 자기는 없어지고 예수 그리스도만 나타나게 하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다. 철저하게 언어를 배워 소통이 가능해졌다 해도, 문화를 익혀서 더 깊이 그들의 삶으로 들어갔다 해도, 선교는 쉬운 일이 아니다. 학교를 세우고, 선교원을 개원하고, 태권도나 문화 행사를 통해 그들에게 다가가더라도 선교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음식을 포기하고, 그들의 옷을 입으며, 그들의 언어로 복음을 전한다 해도 그들을 이해시키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러나 선교사는 이런 불가능 같은 사역일지라도 Mission Possible화 하는 노력을 끊임없이 시도해야 한다. 그래서 선교사는 위대한 사람들이다.

삶의 복음을 선포하라.

복음은 선포이다. 그러나 입으로만이 아니라 삶으로 보여주는 삶의 선포를 해야 한다. 그래서 선교가 힘든 것이다. 선교사의 일거수일투족을 어항 속의 물고기가 투명하게 보여지는 것처럼 현장의 사람들이 보고 있다. 선교사들이야말로 위대하신 하나님과 예수님을 보여 주어야 하는 복음의 배우 역할을 해야 한다. 언어와 행동과 삶이 복음으로 드러나야 한다. 현장의 사람들은 복음을 듣고 싶어 하지 않고 보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선교를 통해 오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확신만이 불확실한 시대를 이길 수 있다. 선교사들이 하나님 나라를 말로, 삶으로 선포할 때 하나님 나라가 도래하고 무서운 세상이 하나님 나라로 바뀔 것이다. 우리 모두가 불확실한 시대의 선교사이다. 선교사들을 위해 더욱 간절히 기도할 때 하나님의 나라가 기적처럼 이 땅에 임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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