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22장 16절과 18절에서 주님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까지 다시 먹지 아니라” 그리고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라는 말씀을 하셨다. 이 말씀의 깊은 뜻은 장차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유월절의 어린양의 모형이신 예수님
십자가에 달리시기 바로 전 유월절에 주님이 제자들에게 마지막 만찬을 준비하도록 하셨다. 어느 장소를 정할 것인가부터 어린이 동화 같은 말씀을 하셨다. 전혀 모르는 사람이 물동이를 이고 갈 것이다. 이 사람을 만나거든 그를 따라가라. 거기서 그 집 주인 여인이 만찬을 어디에서 할지를 알려 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신기하고 신비스럽다. 어떻게 이런 일이… 어쨌든지 그 여인이준비한 곳에서 유월절 모임을 하셨다.
누가복음 22장 15절에 주님은 “이르시되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고 말씀하셨다. 왜 ‘원하고 원하였노라’고 반복적으로 같은 말씀을 하셨을까? 주님은 제자들과 3년을 함께 하셨으니 할 말씀은 다 하셨을 것이다. 그렇다면 원하고 원하였다는 말씀은 무엇일까? 이제 막 떠나기 전에 매우 중요한 계시가 있을 것을 충분하게 짐작할 수 있다. 유월절은 주님의 놀라운 사명을 예견하는 구약의 절기이다. 요한은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이로다.”라고 말했다.
예수님이 유월절 양으로 십자가를 지시는 것을 모형학(Typology) 이라고 말한다. 이 모형학 안에 결코 잊거나 망각해서는 안 될매우 중요한 메시지가 있다. 예수님은 성찬식을 하면서 제자들에게 빵을 떼며 이는 내 살이라 말씀하셨다. 이미 주님은 고린도전서에서 그 살이 의미하는 성찬식을 수없이 해 왔다. 그런데 16절과 18절에 “이 유월절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이루기까지 다시 먹지 아니하리라.”라고 말씀하신다.
이 땅에 다시 오실 유월절 어린양
하나님의 나라에서 이루는 유월절의 의미가 무엇일까? “Until it finds fulfillment in the kingdom of God” 이는 어린양 예수님을 통해 이루어질 구원의 약속이 하나님 나라의 성전에도 완전하게 이루어질 때의 모양을 보여 준다. 성전은 하늘에도 있고 땅에도 있다.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도 이루어지기를 원하셨다. 하늘과 땅은 주님 안에서 하나이다.땅의 유월절이 하늘의 유월절이다. 예수님은 하늘 성소에서도 어린양이시다. 바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지는그때까지 주님은 “밀로 만든 빵을 다시 먹지 아니하시리라”고 하신 것이다. 하늘의 유월절의 의식이 이루어질 때까지 땅의 빵을잡수시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 말씀은 주님은 이 땅에 이 빵을 드시려고 다시 오신다는 것이다. 바로 성찬식의 깊은 의미가 여기에 있다.
고린도전서 11장 26절에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고 말씀하셨다. 주님이 이 땅에 다시 오신다는 것을 강조하시며 그들에게 주어진 사명을 기억하라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고 있는 것이다. 다른 뜻은 주님이 다시 오실 때 하늘의 성도나 땅의 성도가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변한 이곳에서 영원한 예배자로 함께 살것이라는 것이다. 세상은 없어지지 않는다. 새롭게 변할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죽어서 천당에 가는 것이 아니라 원래 만들어주신 에덴동산에서 영원히 살도록 설계하셨다.
우리는 에서 살게 되는 영원한 예배자
시편 115편 16절에 “하늘은 여호와의 하늘이라도 땅은 사람에게 주셨도다.” 그러나 범죄 후에 하나님은 먼저 주님 안에서 죽은자들이 천국에 이르러 살도록 하셨다. 그러다가 주님이 이 땅에 다시 재림, 혹은 강림하실 때에 먼저 죽은 자들이 부활하여 공중에서 땅에서 올라온 성도들과 만나 땅에 내려와 주님이 통치하는 이 땅에서 영원한 예배자로 살게 되는 것을 기대하고 계신다.죽어서 천당을 가는 것을 구원의 종결로 알면 안된다.
이 땅은 어떻게 변할 것인가? 베드로후서 3장에서 잘 가르쳐 주고 있다. 12절에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이 말의 뜻은 지구가 없어진다는 말이 아니다. 하나님은 우주의 작은 지구를 너무너무 아름답게 창조하셨다. 그중에 더더욱 완벽한 에덴동산을 지으시고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지음 받은 우리를 그곳에 영원토록 살도록 하셨다.
이 지구에는 생물의 종류가 1,400만이 넘고 식물이 30만 가지가 넘는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만드시고 화려하게 빛나는 별들을 만드셨다. 그 수많은 별 중에 지구만큼 아름답게 지은 별은 없다. 주님은 자신이 만드신 이 지구를 없애지 않을 것이다. 물론 현재 이 땅은 죄로 인하여 망가졌다. 인간이 타락하면서 모든 짐승들이 싸우고 죽이며, 벌레들이 우리를 물어 질병을 일으키고 있다. 그러나 주님은 이 지구를 다시 회복시킬 것이다. 이사야는 “높은 산이 낮아지면 골짜기가 메꾸어지고 사막에 물이 흐르며 꽃이 피고 회복되면, 어린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고 장난쳐도 물지 않는 그 지구로 회복될 것이다”라고 했다. 이것을 아름다운 서사시로 옮긴 책이 바로 <복낙원>이다. <존 밀턴>은 이 책에서 장차 이루어질 땅의 회복을 성경적으로 바라 보았던 것이다.
하나님의 뜻 안에서 하나인 하늘과 땅
‘이루심과 임하심’이 이루어질 때까지 주님은 빵을 먹지도 않으시고 포도주를 마시지 않는다고 하셨다. 우리는 이런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게 되기를 위해 서둘러야 한다. 새 번역 성경은 베드로후서 3장 12절에 “하나님의 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그날을 앞당기도록 하여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적혀 있다. 영어 성경은 “Speed its coming”이라고 했다. 당연하다. 우리는 그날을 사모해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그날이 어서 오기를 위해 서둘러야 한다. 사모하고 앞당기기 위한 일이 바로 선교하는 일이다.그날을 앞당겨야 한다. 그러므로 선교는 결단코 지체되어서는 안된다. 마태복음 24장 14절이 그 대답이다.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이 본문을 잘 묵상한다면 ‘선교적 종말’을 가장 성경적으로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우리가 가면 주님은 오실 것이다. 로마서 11장 25절에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하면서 이 신비를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 신비는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 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우둔하게 된 것이라.”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돌아오도록 하는 선교가 바로 이 하나님의 나라의 도래를 앞당길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우리는 이런 관점에서 주기도문의 ‘Thy Kingdom Come’을 선교적 차원에서 이해하고 실천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관념적으로 알면 안된다. 내가 호흡하며 먹으며 살고 있는 생리적작용 이상으로 주님이 그 나라가 가깝게 임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를 깨닫는 우리는 그날이 속히 오도록 모든 생명과삶을 동원하여 적극적으로 이 세상을 도전하며 선교하는 믿음의 행보를 계속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