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의 라마단 풍경 / 새일하리 선교사 (아프리카 S국)

라마단의 모습

라마단 한 달 이전부터 이웃집 S족 여자는 마음이 바쁘다. 라마단을 맞이하며 벌써부터 이것 저것 준비할 것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설레기 때문이다. 미리 장만해야 할 음식들을 준비하고 계획해야 하기 때문이다. 요즘은 집안에서 이런 음식들을 준비하지 않고, 시장에서 많이 구입한다. 주로 단 과자들로 하루 동안의 금식을 깨고 이 단 과자들로 그동안의 시장기를 없애는 첫 식사(아침 식사라 부른다)를 위해 필요한 음식들이 주를 이룬다. 그리고 매주 마다 하루씩 금식(주로 목요일)을 한다. 이것은 라마단 기간과 겹치게 될 생리 기간(이 때는 금식하지 않는다)을 미리 앞당겨 하루씩 갚아 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곳 현지어로도 마치 빌린 돈을 갚을 때 쓰는 말과 동일하게 사용한다. 금식 못하는 것을 미리 갚는 것이다.

라마단이 시작되는 날 오전은 너무도 고요하다. 아무도 일찍 일어나지 않는다. 심지어 학교도 라마단 첫 날 또는 첫 주는 방학이다. 그 전날 늦게까지 지내다 새벽에 잠들었기 때문이다. 라마단을 미리 연습하는 것이다. 9시 출근해야 하는 사람이나, 일용직 노동자, 장사치가 아니라면 굳이 일찍 일어날 필요가 없다. 12시가 넘어서 일어나도 좋고, 그보다 더 늦게 일어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금식을 고작 몇 시간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여자들이 주로 이렇게 한다. 이렇게 늦게(오후 2-3시) 일어난 여자들은 그날 먹을 음식을 천천히 준비하기 시작한다.

오후가 되면서 시장은 사람들을 북적거리기 시작하다가 오후 5시쯤 되면 인산인해를 이룬다. 그날 먹을 단 음식과 메인 요리(일명 점심식사-밤 12시)용 재료들을 사기 위해서 몰려들기 때문이다. ‘라마단 특수’는 이것을 일컫는다. 라마단 때는 평소에 비해 3배에서 많게는 5배의 매출을 기록한다. 이 기간에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용품들은 엄청난 세일을 시행하여 사람들의 지갑을 털어간다. 사람들이 라마단을 잘 보내기 위해서는 평소 지출의 몇 배의 돈이 필요하다.

해질녘이 가까이 이르면 도로의 자동차들은 질주를 시작한다. 이 때는 무척 조심해야 한다. 해지기 전에 집에 도착하려는 차들이 엄청난 속도와 변칙 운전을 일삼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가 지고 나면 곧바로 차도는 물론이고 골목길도 인적 하나 없다. 심지어 어떤 차는 많이 급했던지 골목길 한 가운데 비상등만 켜진 채 남겨져 있다. 금식을 깨는 첫 식사(아침식사)를 제 시간에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라마단 첫 식사는 주로 단 음식이 거의 대부분이고, 주로 허기짐을 채울 수 있는 가벼운 음식들이 차려진다. 하지만 아이들의 눈에는 이 모든 것들이 무슨 잔치처럼 보인다. 특히나 가난 한 집 아이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이렇게 라마단은 어린 아이들에게는 30일 동안 있는 특별한 환상의 기간이다. 왜? 맛있는 음식을 밤새 먹을 수 있을 뿐 아니라, 낮과 밤이 바뀌어 밤새도록 아이들과 뛰놀아도 누구하나 나무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매년 한번 씩 돌아오는 30일 간의 특별한 경험은 아이들에게 자연스럽게 이 라마단의 매력에 빠지게 한다.

해가 지자마자 먹는 첫 식사를 시작으로 밤 12시쯤 되면 일명 점심을 먹는다. 이 때는 그날의 메인 요리가 나온다. 아주 푸짐해야 하고, 또 잘 먹어야 한다. 왜냐하면 다음 날 아침 일찍 출근해야 하는 사람은 새벽에 소화가 최대한 천천히 되는 곡물 음식을 먹어야 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주로 이 식사가 그 날의 마지막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꼭 그렇지만은 않다. 왜냐하면 첫 식사 이후와 두 번째 식사 이후 새벽까지 주로 밤새 이웃이나 친척들을 꼭 방문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방문하는 동안 식사는 아니어도 이것저것 간식들을 먹고 즐기기 때문이다.

라마단은 왜 그렇게 중요한가?

별 것 없어 보이는 이 라마단, 단지 낮과 밤을 바꿔 놓은 것과 다를 바 없는 이 라마단이 뭐가 그렇게 중요해서 그렇게 요란스러운 것일까?

그것은 이 라마단을 독려하는 이맘(이슬람 설교가)들에게 해답을 찾을 수 있다. 물론 그들의 경전인 쿠란에서 비롯된다. 이슬람이란 종교는 행위의 종교이다. 사람이 죽어서 심판자 앞에 섰을 때, 그가 생전에 행한 선한 행위와 죄를 저울에 달아보아 무거운 쪽에 따라 천국과 지옥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있다. 라마단을 지키고, 이 라마단 때 한 행위는 평소의 점수보다 50배를 받는다. 이맘들은 이것을 라마단이 시작하기 전부터 사람들에게 무척 강조하며 준비시킨다. 평소에 그 어떤 죄를 지었어도 라마단을 잘 지키고, 라마단에 선한 일을 하고, 모스크에 잘 출석하면 전혀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고 가르치는 것이다.

이보다 쉬운 속죄 방법이 어디 있는가? 라마단보다 쉽게 점수를 얻는 방법이 또 어디 있을까? 무함마드는 왜 이렇게까지 라마단을 꼭 지키도록 가르쳤을까? 그것은 라마단의 시작에 그 해답이 있다. 라마단은 무함마드가 동굴에 들어가 금식하며 묵상하던 중 악한 영(일명 가브리엘)을 만나 그 영으로부터 가르침을 받던 시기를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다. 악한 영과 교제했던 기간이 라마단이다. 상상해 보라! 전 세계 모든 무슬림들이 30일의 특별한 기간을 정해놓고, 한꺼번에 동시에 악한 영과의 만남을 갈망하고, 무릎 꿇어 엎드린다는 것은 엄청난 영적 파워가 그 사이에서 왕래하는 것이다. 이슬람의 이 악한 영은 이렇게 사람들을 자신의 영원한 종으로 가둬두는 것이다. 이런 영적 파워 울타리 안으로 들어온 하나님의 일군들이 그 속에서 무엇을 할 수 있으며,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일까? 또 그들을 보낸 공동체와 그들을 응원하고 중보하는 이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물론 우리는 많은 일꾼들을 무슬림들 가운데 보내 성공적으로 사역을 일으키는 것을 보고받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무슬림 사역의 극히 일부일 뿐이다. 무슬림 난민사역을 제외한 대다수의 사역의 모습들은 여전히 어려움 가운데 있다. 무슬림들 가운데 “진정한 평화는 힘이다”라는 말이 있다. 이슬람은 그 시작부터 힘에서 출발한다. 무함마드의 목을 쥐고 죽음으로 위협했던 악한 영에서부터, 칼을 들고 나라들을 정복해 가고, 세금과 죽음으로 위협하던 그들의 시작이 그러했다. 누가 더 힘이 세냐? 하는 것이다. 무슬림을 종으로 삼고 있는 ‘악한 이슬람의 영’, 그것보다 강한 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어느 날 예수님이 몇몇 제자들과 변화산에서 내려오셨을 때, 귀신들린 아이를 고치지 못한 제자들과 그 아버지를 만났다. 예수님이 그 아이를 고치신 후 제자들이 물었다. “왜 우리는 하지 못하였습니까?” 이 때 예수님은 특별한 말씀을 하신다. “이런 종류는 기도와 금식을 통하지 않고는 나가지 아니하느니라”. 어떤 악한 영들은 “기도와 금식”이 있어야만 나간다는 말씀이다. 이슬람의 영은 어떠할까? 쉽게 나갈 것 같은가?

악한 이슬람의 영을 대적하는 유일한 길은 금식과 기도이다. 우리는 기도와 금식으로 자신이 속한 지역의 악한 이슬람의 영을 몰아내야 한다. 기도와 금식으로 악한 이슬람의 영보다 강한 하늘의 군대를 요청해야 한다. 하늘 문은 진정한 중보자에 의해 열린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늘 문을 여는 이 일에 온 힘을 쏟아 부으리라”는 헌신적인 중보자가 필요하다. 악한 이슬람의 영의 통치가 있는 지역 사회 안으로 들어간 주의 일꾼이라면 반드시 강력한 하늘의 군대를 요청해야 한다. 그리고 그를 보낸 공동체와 그를 위해 함께 기도하는 중보자도 바로 이것을 위해 구해야 한다. 하늘 문을 열자. 강력한 중보로 하늘 문을 열자.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물론 우리는 많은 일꾼들을 무슬림들 가운데 보내 성공적으로 사역을 일으키는 것을 보고받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무슬림 사역의 극히 일부일 뿐이다. 무슬림 난민사역을 제외한 대다수의 사역의 모습들은 여전히 어려움 가운데 있다. 무슬림들 가운데 “진정한 평화는 힘이다”라는 말이 있다. 이슬람은 그 시작부터 힘에서 출발한다. 무함마드의 목을 쥐고 죽음으로 위협했던 악한 영에서부터, 칼을 들고 나라들을 정복해 가고, 세금과 죽음으로 위협하던 그들의 시작이 그러했다. 누가 더 힘이 세냐? 하는 것이다. 무슬림을 종으로 삼고 있는 ‘악한 이슬람의 영’, 그것보다 강한 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어느 날 예수님이 몇몇 제자들과 변화산에서 내려오셨을 때, 귀신들린 아이를 고치지 못한 제자들과 그 아버지를 만났다. 예수님이 그 아이를 고치신 후 제자들이 물었다. “왜 우리는 하지 못하였습니까?” 이 때 예수님은 특별한 말씀을 하신다. “이런 종류는 기도와 금식을 통하지 않고는 나가지 아니하느니라”. 어떤 악한 영들은 “기도와 금식”이 있어야만 나간다는 말씀이다. 이슬람의 영은 어떠할까? 쉽게 나갈 것 같은가?

악한 이슬람의 영을 대적하는 유일한 길은 금식과 기도이다. 우리는 기도와 금식으로 자신이 속한 지역의 악한 이슬람의 영을 몰아내야 한다. 기도와 금식으로 악한 이슬람의 영보다 강한 하늘의 군대를 요청해야 한다. 하늘 문은 진정한 중보자에 의해 열린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늘 문을 여는 이 일에 온 힘을 쏟아 부으리라”는 헌신적인 중보자가 필요하다. 악한 이슬람의 영의 통치가 있는 지역 사회 안으로 들어간 주의 일꾼이라면 반드시 강력한 하늘의 군대를 요청해야 한다. 그리고 그를 보낸 공동체와 그를 위해 함께 기도하는 중보자도 바로 이것을 위해 구해야 한다. 하늘 문을 열자. 강력한 중보로 하늘 문을 열자.

하늘 아버지여, 이 땅에 하늘 군대,
아버지의 군대를 보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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