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지상 선교사를 기억하며 / 정민경 선교사(컴미션 미국 본부)

2024년 5월12일, 무릎 선교사님들을 향한 감사

오늘은 권지상 선교사를 본향으로 먼저 보낸 지 10년이 되는 날입니다. 지난 10년을 돌아보면서 어떤 말로 지난 10년을 표현할 수 있을까 참 많은 고민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32살에 혼자가 되었던 저는 이제 마흔이 넘는 나이가 되었고, 서부 아프리카 말리를 떠나 컴미션 미국 본부에서 10년이라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야속하게 느껴졌던 때도 있었지만, 적어도 저에게는 틀린 말은 아니라는 것을 실감했던 시간이기도 합니다. 무릎 선교사님들, 컴미션의 각 지역 본부들, 그리고 현장 선교사님들의 기도와 사랑, 그리고 진심의 격려가 없었다면 지난 10년의 시간은 결코 약이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고통과 아픔을 통과하면서도 낙심하지 않고 계속해서 하나님 나라를 바랄 수 있도록 기도와 사랑으로 함께 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실수가 없으신 나의 아버지 하나님

권지상 선교사를 떠나보내며 전지전능하고 실수가 없으신 하나님이 이번만큼은 실수하셨다고 믿고 싶었습니다. 실수가 아니라면 기가 막히고 감히 제 수준에서는 이해할 수조차 없는 그의 죽음을 달리 해석할 길이 없었습니다. 이 일이 실수가 아니라 하나님의 큰 뜻 가운데 있는 것이라면 그 하나님의 뜻은 저에게 너무 잔인하고 가혹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실수라 믿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선하고 좋으신 하나님께서 이번 만은, 그리고 적어도 나에게 만큼은 실수하셨다 믿어야 살 것 같은 날들이 있었지만 하나님은 로마서 말씀을 통해 그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의 깊이와 판단은 나의 수준에서 헤아릴 만한 깊이와 넓이, 그리고 높이가 아님을 깨닫고 인정하게 하셨습니다(롬11:33-36).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내게 이러실 수 있는가 라는 낙심과 원망으로 기도 조차 나오지 않았던 지난날들 속에서도 하나님은 다시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기까지 기다려 주셨고, 실수가 없으신 나의 주이심을 다시금 고백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다시 만난 하나님

28살이었던 2010년, 컴미션의 파송을 받고 서부 아프리카 말리로 떠났던 저에게 그다지 큰 욕심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저 하나님 보시기에 예쁘고 자랑이 되는 선교사로, 남편에게 사랑받고 또 남편을 사랑하고 잘 섬기는 아내로, 현지 이웃들에게 좋은 친구로 살고 싶었습니다. 그것이 욕심이라면 욕심이었지요. 안락한 한국에서의 삶을 뒤로 하고 제 삶 속에서 경험해 본 적이 없던 열악하기가 말로 다할 수 없었던 말리로 간 것은 나의 꽃다운 젊음을 드린 헌신이라 믿었기에 꽃길은 아니라 하더라도 진흙탕 인생은 아닐 것이라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권지상 선교사의 소천은 제가 상상하고 바랬던 하나님의 일하심과는 180도 달랐습니다. 이 아픔과 고난은 제가 누구를 믿고 있는가를 들여다보게 했던 것 같습니다. 마치 알라딘에 등장하는 요술 램프 지니처럼 제가 믿고 싶고 바라는 대로 일해 주길 바라는 존재로 하나님을 믿고 있었던 제 모습을 대면하게 됐던 것이지요. 그렇게 저는 고난을 통해 내가 하나님을 어떻게 믿고 있는지를 돌아볼 수 있게 되었고, 제가 믿고 싶었던 내가 만들어 낸 하나님이 아닌,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물론 꼭 이렇게여야만 했을까, 이런 방법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새롭게 하나님을 만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라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 또한 내가 제한하는 하나님의 일하심의 수준인 것을 인정하게 되었고, 그 하나님께 나의 연약함과 생각의 수준을 인정하고 순복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지난 10년의 시간 속에 함께 했던 믿음의 동역자들

문득문득 찾아오는 권지상 선교사를 향한 사무치는 그리움과 외로움, 또 혼자서 감당 했어야 했던 억울함 등등을 통과하면서 쉽지는 않았지만 그 시간들을 통해 단단해져 갔고, 일상을 살아가는 기쁨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저에게는 고통의 시간 속에서도 힘을 내게 하고, 웃게 하고,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곁에서 함께 했던 동역자들이 있었습니다. 이재환 선교사님 내외 분과 미국 본부 식구들, 또 컴미션 지역 본부들, 많은 현장 선교사님들과 무릎 선교사님들의 기도와 격려, 사랑과 관심은 저를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고, 또 하나님께로 시선을 다시 고정하게 했으며, 이 땅에 임할 하나님의 나라를 향한 소망을 다시 품게 해주었습니다. 고아와 과부, 나그네를 돌보도록 구약 시대에서부터 당부하셨던 하나님의 말씀의 의미를 경험했고, 그래서 제가 얼마나 큰 하나님의 돌보심과 축복, 사랑 속에 있는지를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활짝 꽃 피운 그의 인생에 참여한 축복

억울함도 가득했고, 비참함은 말로 다할 수 없었습니다. 여자 혼자라고 사람들에게 무시당할 때, 노부부가 손을 잡고 걸어가는 뒷모습을 볼 때, 유모차를 밀고 가는 젊은 부부들과 가족의 모습들을 볼 때… 부럽지 않고, 서럽지 않고, 하나님이 원망스럽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요.. 매해 5월이 되면 우울해지곤 했는데, 2년 전, 5월, 벚꽃처럼 아름답게 활짝 핀 권지상 선교사의 인생에 제가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이었는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가 손해 본 것 같고 억울한 것 같았지만, 잠시라 할지라도 그의 활짝 펴 가장 아름다웠던 인생의 순간에 제가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은 분명 특권이었고, 선물이었으며, 감사라는 것을 말이지요…

말리와 불어권을 향한 중보기도자

저는 지난 1월, 12년 만에 다시 프랑스 본부를 방문했습니다. 권지상 선교사의 소천 이후 말리는 저에게 마치 아픈 손가락 같았습니다. 외면하기에는 너무 사랑하고 애틋함 가득한 곳이지만, 그렇다고 가까이 하기에는 제 가슴이 너무 아팠기에 그랬나 봅니다. 저는 용기를 내어 긴 시간 외면해 왔던 불어권 아프리카를 다시 대면하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방문했던 삼백용사 초청 집회 기간 동안 저는 지난 10여 년 동안 불어권 아프리카 가운데 일해 오신 하나님의 일하심을 들으며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고, 10년 전에는 감히 상상하지도 못했던 일들이 이미 일어났고 지금도 일어나고 있음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동안 마음에서 밀어내 구석에서 겨우겨우 자리보전만 하고 있었던 말리와 불어권 아프리카를 향한 파수꾼의 자리를 다시금 사수하고 기도의 자리를 지키겠다는 고백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불어권 아프리카는 권지상 선교사를 통해 접하게 되었지만, 이제 저에게는 유업과도 같은 존재가 된 것 같습니다. 물론 그가 이 땅에 있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겠지만, 저에게 이렇게 귀한 유업을 품게 해 준 권지상 선교사에게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새로운 시즌

저는 권지상 선교사의 아름다웠던 인생에 함께할 수 있었던 것에 하나님께 감사하며 동시에 아가서 2장 10-13절 말씀을 통해 새로운 계절로 이끄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겨울이 지나고 비도 그쳤고 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가 노래할 때라고 말하는 아가서 말씀이 저에게 큰 도전과 감동이 되면서도, 구체적으로 그 말씀이 제 인생에 어떻게 펼쳐질지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분 안에 거하며 저에게 주어진 지금의 삶을 잘 살아내고 싶습니다. 저에게 미국에서의 10여 년의 시간은 잘 회복되고,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 이 땅에 임할 하나님 나라를 향한 소망을 놓치지 않고 계속 붙잡을 수 있게 한 선물과도 같은 시간이었다고 믿습니다. 저는 약 2년 정도 몸을 돌보며 한국에 머물 계획 가운데 있습니다. 한 치 앞도 모르는 이 땅에서의 인생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갈 제 여정이 하나님 앞에 섰을 때 부끄러움이 없도록, 또 그분 앞에 섰을 때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 칭찬받을 수 있도록 저에게 지금 허락된 이 시간들을 약으로, 또 선물로 귀히 여기며 그의 나라가 속히 이 땅 가운데 임하도록 하는 일들에 참여하는 인생을 계속해서 살아가고 싶습니다. 세상 끝 날까지 함께 하시겠다는 그 약속을 붙잡고 두려워하지 않고 믿음의 여정을 잘 걸어갈 수 있도록 계속해서 기도를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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