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는글 - 삶보다 죽음의 의미를 가르쳐준 우리의 순교자들이 그립습니다
여름이 되면 우리는 가장 무겁고 가장 슬픈 시간을 기억하게 된다. 9개월 된 아기를 비롯하여 30대 젊은 남편 선교사와 40대 부부가 각자의 남편과 아내를 선교 현장에서 하늘나라로 떠나보낸 시간이기 때문이다. 부모를 따라 현장에 갔던 3개월 된 아기가 부모를 따라가지 않았다면 9개월 살고 그렇게 쉽게 생명을 잃지 않았을 텐데… 30대 선교사가 너무 험한 곳을 선교 현장으로 찾아가지 않았다면 그런 변을 당하지 않았을 텐데… 의료 환경이 나은 곳으로 갔다면 어린아이 2명을 두고 그렇게 쉽게 가족 곁을 떠나지 않았을 텐데… 코로나-19가 극심할 때 미국에 있었다면 바로 치료를 받아 아내에게 엄청난 사역을 홀홀 남겨 두고 떠나지 않았을 텐데… 인간적으로는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마음 한구석에 여전히 남아 있다.
저들의 사망 소식을 들었을 때마다 인간인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음을 뼈저리게 확인하였다. 죽음까지도 불사하고 열정 하나로 안전한 땅을 두고 떠난 선교사들이었는데,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는 “내가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겠다.”라는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았음에 대한 서운함이 떠나지 않는다. 하나님의 큰 그림으로 본다면 죽음이 다른 생명을 잉태하는 과정이라 볼 수 있지만 그래도 아쉽기만 하다.
떠난 사람들보다 남겨진 가족들을 볼 때마다 그때의 아픈 상처가 여전히 저들 가운데 사라지지 않은 것을 본다. 부활의 그날을 바라보며 다시 만날 날을 기대하고 있겠지만 여전히 가슴 한 곳이 뻥 뚫려 있는 것만 같다. 아기를 잃은 부모와 아내와 남편을 잃은 젊은 선교사들의 그리움의 자리를 우리 예수님이 채워주시고 있다고 믿는다. 그래도 그들을 바라볼 때마다 문뜩문뜩 밀려오는 미안한 감정은 리더로서의 책임감 때문이리라. 아무리 그들의 외로움과 아픔을 동감한다고는 하지만 그들만이 품고 사는 괴로움의 고통의 시간들을 누가 그들처럼 깊이 안다고 할 수 있을까?
누구나 죽음을 운명처럼 가지고 태어나지만 선교사는 죽음을 자발적으로 선택한 사람들이다. 죽으면 죽으리라고 선교사로 지원했지만 정작 우리에게 닥쳤을 때, 곁에서 지켜보는 것조차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고백한다. 주님은 순교자의 숫자가 채워지면 다시 오시겠다고 하셨는데 얼마나 더 많은 숫자가 순교자의 명단에 기록되어야 하는가? 우리보다 앞서 하나님 곁에 머물게 된 귀한 선교사들이 사는 날보다 죽음의 날을 더 생각하게 하기에 저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죽기까지 충성을 다하기를 각오한다. 머지않아 얼굴과 얼굴을 대하며 만날 날을 고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