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예진 선교사
2023년 7월 우리 가족은 네팔 포카라에 정착하게 됐다. 그곳에서 만난 컴미션 소속의 문찬식 & 김희정 선교사님을 통해 컴미션을 알게 됐다. “소속된 선교 단체가 없어요? 우리 단체 좋은데, 한국 가면 본부에 한 번 가봐요.” 쉽게 다가가 말 걸기 어려워하는우리 부부에게 문 선교사님 가정은 먼저 친근하게 다가와 주신 분들이었다. 가볍지만 진심 어린 두 분의 제안에 2023년 10월한국 방문 때 가산동에 위치한 한국 컴미션 본부에 방문했다. 처음 만난 이영광 선교사님은 키가 크고 늘씬한, 그리고 인상이 좋은 분이셨다. 인상보다 더 좋았던 건 대화 중에 느낄 수 있었던 환영받는 느낌과 차분함이었다.
그때 나는 임신하지 않은 상태였지만 혹시나 훈련 기간이 정해지고 나서 아이가 생기거나 훈련 기간이 출산 직후가 될 수도 있기에 만약 그런 상황이 되어도 훈련을 받을 수 있는지 여쭤보았는데 “아 그럼요, 훈련받을 수 있지요. 아이들이 있어서 선교지에 못가지 않고, 임신 중에도 선교지에서 사는데 선교 훈련도 그렇게 받는 거죠.”라는 흔쾌한 대답을 해주셨다. “ 한국인이 아니고 한국어가 어색한 남편도 함께 훈련받고 이후 파송도 받을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에 그렇다는 긍정적인 대답과 함께 이영광 선교사님은 지갑에서 황금색 외국인등록증을 꺼내 보여주셨다. “저도 한국인 아니에요.”라는 말과 함께…. 할렐루야!
훈련을 향한 기대
결혼 후 남편과 함께 선교 훈련을 받고 싶다는 간절함을 품은 채로 8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는데 드디어 우리 부부에게 선교 훈련을 받을 기회가 주어졌다. 훈련을 받기 전 기대와 궁금함이 있었다. 어떤 훈련일까, 또 함께하는 사람들은 어떤 분들일까, 머무는곳은 어떤 곳일까 등 안개 같은 소망을 품고 ‘주님 저희 드디어 훈련받아요. 인생 최고의 시간이 되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하며준비 기간을 보냈다. 입소하는 날, 주차장에 도착한 우리를 최은지 간사님과 서규한 간사님이 맞이해주셨다. 최은지 간사님은 짐까지 옮겨 주시며 401호로 안내해주셨고, 문을 열며 우리 가족이 머물 곳이라고 안내해 주셨다.방에 들어간 우리는 ‘우와’ 했다.숙소가 너무 좋았다. 넓은 공간에 모든 것이 갖춰져 있었다. 아이들은 그날 저녁까지 업된 상태로 방을 누비며 돌아다녔다.
훈련의 시작
드디어 훈련이 시작됐다. 드디어 훈련이 시작됐다. 강의를 위해 호주에서 강사를 모셨다는 것이 놀라웠다. 첫 강사로 백부장 선교사님이 오셨는데, 일주일 동안 강의를 들으며 백부장 선교사님은 솔직하고 열심히 공부하시는 분, 그리고 마음이 뜨거운 선교사님이시라는 것이 느껴졌다. 이런 분이 호주 컴미션의 대표시라는 것을 알고는 컴미션이 좀 더 궁금해졌다.
훈련생들은 딱 남자 셋, 여자 셋이었다. 분위기는 다르지만 모여 있으면 오묘하게 잘 어울리고 재미있었다. 개인으로 보면 다 특이한 것 같은데, 모이면 조화로웠다. 한국 & 미국 커플이 계셔서 인도 & 한국의 다문화 가족인 우리가 그리 독특하게 보이지 않아 좋았다. 그리고 훈련을 섬기는 분들이 강사님까지 7명이었는데, 이것도 신기했다. 훈련생보다 섬김이가 많은 훈련이라니….모든 분이 하늘이와 메아리를 있는 그대로 예뻐해 주셨다. 강의 중 자꾸 등장해서 귓속말하고 가고, 화장실에 데려가 달라고도하고 강의실 옆 공간에서 뛰어다녀도 다 받아 주셨다. 마음이 놓였다. 이곳에 온 첫날부터 아이들도 안정되어 보였다. 수고해 주시는 간사님들이 우리 모르게 아이들도 케어해 주고 계셨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감사, 감사합니다.
통역과 이를 통한 은혜
이번 훈련의 전체적인 내용은 실제 삶과 현장에서 재생산을 해낼 수 있는 제자로 성장할 수 있도록 세팅되어 있었다. 반복하고또 반복하며 잊지 않도록 하는 과정이 좋았다. 첫째 주와 둘째 주 강의들은 양이 많고 일반적이지 않은 단어들이 많은 강의였다.그래서 한국어가 서툰 남편과 미나 자매(미국)가 이해하기에는 조금 어려웠다. 강의 후 쉬는 시간에 두 분의이해를 돕고자 나는모든 강의마다 초집중해서 듣고 기록했다. 그래서인지 훈련 스케줄은 힘들지 않았는데도 숙소에 돌아오면 긴장이 풀리며 푹 쉬게 되었다.
복음 증거를 위한 실제적 전략
이영광 선교사님의 강의를 통해 재생산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전략을 더 구체적으로 배우면서 내 머리와 몸에 정착시키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다. 열심히 복습하고 열심히 배웠지만 실전에서 전도를 하는 날 안되고 못 하는 것들이 드러나며 깨달았다. ‘모르는 것투성이구나.’ 나는 그동안 선교지에서 뭐 했나?’ 나를 인내해 주신 주님께 죄송스러웠다. 다시 도전한다. 반복해서 훈련할것이다.
훈련생들과의 친밀함, 그리고 우리의 사명
2주가 지나자, 훈련생들은 좀 더 친해졌다. 처음부터 서로를 경계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긴장이 풀렸다고 할까. 형제들은 형제들끼리 만나고, 자매들은 자매들끼리 따로 만남의 시간을 가지며 점점 가까워졌다. 세 번의 자매 모임 시간은 정말 달콤했다. 남편이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주어 자유롭게 보낼 수 있어서 그랬던 것일까? 여섯 명의 자매는 티키타카가 잘 됐다. 재밌어서 많이 웃었는데 들으면서 어떤 포인트에선 ‘아하!’ 하고 배우기도 했다. 주님의 만지심과 깨닫게 하심이 있는 행복한 교제였다. 다시 또 모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조심스레 기대해 본다.
언제부턴가 ‘가족’이라는 단어가 맴돌았다. 3주가 지났을 때 이제 마지막 주라는 게 너무 아쉬웠다. 벌써 시간이 쏜살같이 날아서오늘은 마지막 날이다. 모두와 헤어져야 함도 아쉽고, 떠남도 아쉽다. 이영광 선교사님이 ‘이 훈련이 끝나고 관계가 남아야 한다.’몇 번 말씀하셨는데 이건 우리 모두 성공한 것 같다. 마지막 날이었던 오늘 아침 마가복음 16장을 묵상하는 시간에 정민경 선교사님이 나누신 내용 중, “예수님의 공생애 3년을 함께 한 제자들의 시간이 마치 이 훈련과도 비슷한 것 같다, 한 달의 시간 동안마음껏 배우고 누렸다면 이제는 훈련을 마치고 각자의 자리에서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감당해야 할 때인 것 같다.” 하셨을 때 약간 떨리면서 ‘이제 시작이구나.’ 싶었다.
부부에게 시작하신 하나님의 치유
훈련 중 받았던 부부 상담을 기점으로 우리 부부와 가정을 만지시는 하나님의 치유가 시작됨이 감사하다. 태중의 두 아이도 이시간에 동참했다는 것이 참 감사하다. 주님께서 내게 응답해 주셨다. 정말 최고의 시간이 되게 하셨다. ‘이곳이 좋사오니’라고 할만큼 따뜻한 둥지에서 충전과 공급을 받는 시간이었기에 육체적으로도, 정서적으로 참 행복했다. 우리 가족에게 사랑 넘치는 훈련의 기회를 주신 컴미션과 기꺼이 모든 자리에서 섬겨 주신 모든들께 감사하다.
비크람 선교사
우선, 여러 가지 방법으로 저를 도와주신 강사님들과 함께해 주신 선교사들님과 간사님들에게 정말 감사드립니다. 사실 처음 가족과 함께 여기 왔을 때 한 가지 생각이 계속 떠올랐는데, ‘내가 이해도 못하는 언어로 어떻게 매일 강의를 듣지?’ 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려한 대로 매 강의 시간은 저에게 일종의 고문과도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강사님들은 자신이 나눠야 하는 강의에 대해항상 잘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언어의 장벽으로 인해 어느 때는 듣다가 지쳐 잠이 들기도 했습니다. 또 하나의 어려움은리포트 작성이었습니다. 강의 내용도 이해하지 못했는데, 어떻게 리포트를 작성할까요? 제 아내는 저에게 정말 많은 도움을 주었고 리포트를 무사히 제출할 수 있었습니다.
양화진에서 만난 미국 남감리회 파송의 여선교사, 루비 레이첼 켄드릭(1893~1908년) 선교사의 묘지가 인상 깊었습니다. “제가한국에 줄 천 개의 생명이 있다면, 한국은 그 모든 생명을 가져야 합니다.” 켄드릭 선교사님의 말은 제 마음을 감동시켰습니다.그녀의 유언을 통해 저는 선교지를 향한 진정한 사랑을 느낄 수 있었고, 동시에 저 또한 선교지의 사람들을 향해 그녀처럼 진정한 사랑을 가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냐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전도 훈련을 하며 한국 땅에서 복음을 전한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저희 팀이 신촌과 연세대학교로 가기로 결정했을 때, 저는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편이 아니라 조금 긴장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저의 성향과 기질을 넘어서서 하나님께서 일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훈련생들과 함께 모여서 훈련을 받을 수 있어 정말 좋았습니다. 이렇게 오랜 기간 동안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한국어로 훈련하는 과정에 참석한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부담감 속에서도 웃는 법을 배웠고,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경험도 얻었습니다. 또한 아내의 도움 없이는 이 훈련을 마치는 것이 불가능했다는 것도 실감했습니다. 아내가 정말 많이 도와줬고, 다른 사람들도 웃으면서 기쁨으로 섬겨주었습니다. 함께하며 큰 격려를 받았고, 친절함과 겸손함, 넘치는 사랑의 마음을 보여주신 모든 분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