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에도 아프리카에서의 삶을 잊지 않겠습니다 / 이재환 선교사(컴미션 국제대표)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마태복음 24장 14절)

올해 첫날, 주님이 내게 “미국식으로 살래? 아니면 아프리카식으로 살래?”라고 질문하셨다. 머리가 쭈뼛하고 모골이 송연해지는 아찔한 순간이었다.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하여 한참을 멍해 있었다. 물질의 풍요 속에서 가난한 아프리카를 잊고 살고 있었던 것이다. 

올해 초, 정확하게는 첫 주일이었다. 아내와 나는 8인승 승합차를 구하려고 시장 조사를 나갔다. 농장 훈련소에 꼭 필요한 자동차를 구입하기 위해서이다. 수확 철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돕기 위해 농장으로 오게 된다. 이들을 공항에서 픽업해 올 때마다 자동차로 인해 어려움을 겪어 오고 있었다. 적어도 8인승 승합차가 필요했다. 마침, 선교에 관심을 가지고있던 한국 국적의 훈련생이 매우 오래되어 낡은 자동차(7인승Ford)를 가지고 우리 농장에 왔었다. 그런데 그가 경제적으로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기에 그 차를 높은 가격에 구입해 주었다. 고치면 많은 인원이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던것이다. 그런데 만만치 않았다. 많은 경비를 들여 여러 군데정비소를 찾아가며 고치려고 노력했음에도 문제가 많아 폐차처리를 해야 할 형편이었다. 

그래서 정초에 새 자동차 구입을 위해 딜러를 찾아갔다. 그런데 가격이 예상외로 높아 우리 둘은 허탈한 심정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그날 저녁 주님이 내게 이런 질문을 하신 것이다. 그 순간 과거 감비아에서 살던 시절이 주마등처럼 머리에 떠올랐다. 생각의 필름을 통해 과거를 보게 되고 현실을 느끼게 하는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것이었다. 아프리카에서는 이런 자동차도 앞으로 20년은 더 탈 수 있는데… 어떤 목사님의 소개로 좋은 정비사 집사님을 소개받았다. 그를 우리 집에 초대를 해서 움직이지 않는 자동차를 살펴보게 하였다. 그는 “선교사님 이런 차는 더 이상 굴리면 안 됩니다.”라고 그가 대답했다. 나는 “집사님! 저는 아프리카 선교사 출신입니다. 아프리카에서는 이런 자동차도 오래 쓸 수 있습니다. 제발 고쳐 주셔서 사용하게 해 주세요.”라고 간청을 했다. 집사님은 자동차를 오랫동안 살펴본 후 “예, 그러시다면 한번 고쳐 보겠습니다.”

며칠 걸려 이곳저곳을 수리하며 수많은 시간을 투자하였다. 수 없이 땀을 흘린 후 정비사 집사님의 노력으로 자동차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동차 수리비도 많이 들었다. 자동차가 부활하는 것을 보면서 미국식으로 살지 않겠다는 결심을다시 하게 된 것이다. 아니 물질이 우상이 되기 쉬운 미국 생활에 젖어 들지 않고 바르게 성경적으로 살아야겠다는 각오를 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많은 분이 나의 농장 생활을 염려한다. 우선 “당신 같은 고급 인력이 시골에 파묻혀 이런 농사나 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나 스스로를 고급 인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뽕나무를 키우던 <아모스> 선지자 같은 삶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나는 선지자도 아니고 선지자의 아들도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내게 경고하라는 명령이 있으므로 외치는 것이다.”라는 아모스의 외침이 나의 고백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미국에 살지만 미국인이기 전에 하나님의 종이요, 사람이다. 고급 인력이 아니다. 아주 평범한 농부 선교사일 뿐이다.

올해 8년 차 농사꾼 선교사로 살아온 것이 매우 감격스럽고 감사하다. 노동의 가치와 광야의 영성을 매우 쉽게 접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은 쉽지 않다. 노동은 힘들다. 노동은 하고 싶지 않을 뿐 아니라 내면의 게으름과의 끊임없는 전쟁을 해야 한다. 좋은 점은 자연 속에서 자연 계시를 쉽게 접하게 되고 자연 계시 속에서 특별한 계시를 얻게 된다. 성경 못지않은 말씀이 자연 속에 있다. 이곳에는 제칠일 안식일 교회의 교인들이 많이 살고 있다. 이들은 이곳을 피난처로 삼고 살고 있다. 이들과 이웃하며 진정한 진리의 가치를 더욱 알게 되는 경험을 하고 있다. 우리와는 매우 다른 성경적 견해를 가지고 있어도 결코 논쟁하지 않는다. 서로가 삶으로 진리를 나누는 기회를 가진다. 저들을 동의하지는 않지만 삶을 통해 진리를 터득하기를 기도한다.

현재 곳곳의 난리와 소문, 전쟁과 질병으로 생명들이 위협받고 있다. 상상하기조차 힘들 정도로 사람들이 타락해 가고 있다. 이러한 절망적인 사회상의 모습을 보면서 두 가지를 생각한다. 첫째는 죄로 덧입혀진 인간상의 무능한 실체를 보게 된다는 것이다. 죄성으로 인해 쉼 없이 일어나는 재난들이 인간의 한계성에서 발생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괴롭고 슬프고 좌절이 된다. 이 세상의 신이 악마라는 바울의 말에 동의하게 된다. <줄리엣 카이엠>의 “악마는 잠들지 않는다(The Devil Never Sleeps)”는 말을 백 번 공감하는 아픔을 경험하고 산다.

둘째는 성경의 예언이 그대로 일어나는 현상을 보면서 다가올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는 엔도르핀이 솟아난다는 것이다. 세상이 어지러울수록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더욱 기다리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유일한 희망이다. 이런 하나님 나라의 도래는 “선교라는 매체가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마태복음 24장 14절에 더 큰 확신을 가지게 한다. 이런 선교적 종말은 노동하는 공동체의 존재 이유가 되고 미국에 살지만 아프리카의 힘든 삶을 사모하는 이유가 된다. 세상에 욕심을 내지 않고 노동자의 선교사로 살 수 있는 힘이 되는 것이다. 미국도 아니고, 한국도 아니며 선교사적 삶을 사는 것이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는 자의 삶이라고 믿는다.

엊그제 그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벌써 2025년의 문턱에 서게 되었다. 2024년이 과거 속으로 사라져 간다. 2025년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의 시간의 세기가 이제 끝났으면 좋겠다. 시간이 없는 새 하늘과 새 땅이 어서 왔으면 좋겠다. <유발 하라리>의 “역사 속에서 인간에 의한 평화와 안녕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종말은 단지 연기되었을 뿐이다”라는 말이 사실이다. 시간의 끝남과 새로운 하나님 나라의 도래는 오직 선교를 통해서밖에 올 수 없음을 다시 확신하며 새로 맞이할 새해를 이런 마음으로 기다린다.

Leave a Comment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