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명의 특공대로 구성되어 이곳에 봉사하러 온 <시애틀 임마누엘교회> 우리 일행들은 9월 마지막 주간 5일 동안 엄청난 양의 대추를 땄다. 식사 시간과 말씀을 공부하는 시간 외에는 더 많은 대추를 따려고 애를 썼다. 첫째 날, 일을 마치고 피곤한 몸을 질질 끌며 숙소로 들어가는데 대추 건조대가 있는 방향에 불빛이 보였다. 가만히 보니 목사님과 사모님이 이마에 머리띠처럼 생긴 손전등을 달고 우리들이 따온 대추들을 정리하고 계셨다. 대추를 따는 데만 몰두하였기에 대추를 건조대에 올려놓은 후의 일이 얼마나 많은지를 미쳐 생각을 못 했었다. 그런데 두 분이 밤에 일하시는 것을 보며 왠지 마음이 편치 않았다. 주님은 내게 대추를 딴 이후 일손이 더 많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 주신 것이다. 농부이신 하나님께서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오 주님, 저를 써주세요.” 5일간의 봉사를 마치고 시애틀에 돌아갔지만, 머리 속에서는 끊임없이 농장을 향한 부담감이 맴돌고 있었다. 그래서 한 달간의 시간을 작정하고 홀로 다시 훈련원에 돌아왔다. 빨갛게 익은 대추들이 반짝이는 빨간색 카펫처럼 나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새벽 5시에 기상하여 씻고 잠시 기도한 후 일복으로 무장하고 숙소에서 나갔다. 6시에 찬송을 부르고 말씀을 묵상한 후 오늘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각자에게 적용하며 함께 나누고 온 열방을 위해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7시에 아침 식사를 하고 대추와의 전쟁을 시작하였다. 잘 마른 대추를 테이블에 올려놓고 새가 먹은 것, 탄 것, 상품 가치가 없는 대추들을 골라내었다. 퍼런 먼지가 묻은 것은 칫솔로 닦았다. 일정량이 준비되면 이 대추들을사이즈 선별기에 넣어서 선별하여 큰 박스에 넣는 작업을 매일 하였다. 주문이 들어 오면 대추를 깨끗이 씻어서 비닐봉지에 담아 숙성실에 넣은 후 3일간 매일 뒤집어 주어 숙성된 대추를 만들기도 했다.
우리 교회에서 대추 과자를 38봉지 주문했다. 이순애 선교사님 말씀이 이렇게 많은 대추 과자를 주문받은 것이 처음이라고 하신다. 우리는 초비상에 걸렸다. 저녁이 되어 더 이상 밖에서 일할 수 없게 되면 부엌에 들어와서 대추를 자르는 일을 했다. 문제는 이곳의 칼이 무거운데 무디기까지 하였다. 한 바가지만 잘라도 팔과 어깨가 아팠다. ‘하나님 어떻게 해요?’ 기도했다. 섬광처럼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함께 봉사하러 왔던 전화순 권사님께 SOS를 보냈다. “권사님 <부한 마트>에 가서 제가 교회에서 사용하던 칼 5개를 주문해서 보내 주세요.” 기다리던 칼들이 4일 만에 도착했다. 가볍고 매우 잘 썰어 지기 때문에 모두가 감탄사를 연발하였다. 덕분에 우리는 시애틀의 두 교회에 보내야 할 대추 1,700봉지와 대추 과자 40봉지를 모두 준비하였다.
훈련원에서 한 달간 살아보니 하나님 나라를 사모함으로 선교에 동참하고자 자원하여 오시는 봉사자들이 이곳저곳에서 오셨다. 여러 선교 현장의 필요에 따라 선교사들을 격려하는 일에 귀한 대추들이 쓰임을 받는 것을 보며 함께 열심히 땀을 흘리러 오신 것이다. 나도 하나님의 나라가 속히 임하도록 그 길을 예비하는 일을 묵묵히 해 내는 <킹 살렘 농장 훈련원>에 자부심을 가지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보냈다. 하루도 쉴 틈이 없이 대추를 닦고 씻고 자르고 봉지에 담아 마침내 박스에차곡차곡 담아 대추를 실었다. 마침내 시애틀을 향해 트레일러에 실려 떠나는 대추를 보며 우리는 감격하며 주님을 찬양하였다.
시간이 여유가 생기면 감을 땄다. 일부는 곶감을 만들고 일부는 냉동을 시켰다. 나는 감을 꼼꼼히 깎은 후 한 줄에 15개를 매달아 거의 150개 되는 곶감을 만들었다. 사모님께서 이렇게 맛있는 곶감을 만들어 보기는 처음이라고 하셨다. 이곳의 과일 맛은 마켓에서 사는 과일들과는 너무 달랐다. 사막의 땅 위에서 햇볕을 마음껏 충만하게 쏘인 감, 사과, 복숭아들은 한결같은 신선한 꿀맛이었다. 대추를 비롯하여 모든 과일의 향기가 진하고 달콤하고 상큼하였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힘으로모든 정열을 다해 여러 가지 일을 했다. 저녁에는 피곤한 몸으로 잠자리에 들었지만, 아침에 되면 새 힘으로 다시 일어나곤했다. 이곳은 하나님께서 임재하시고 직접 일하고 계신 곳임을 매일 매일 새삼 느끼곤 하였다.
시애틀로 돌아가기 이틀 전, 처음으로 비가 내렸다. “건조대에 있는 덜 마른 대추들을 거두어 드릴 때까지 비가 오지 않게 해 주세요.” 기도하며 분주히 대추들을 옮기었다. 미쳐 거둘 수 없는 대추들은 모아 천막으로 덮고 나니 후두둑 빗줄기가 쏟아졌다. 할렐루야!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께서는 밖에 널려 있는 덜 마른 대추까지도 다 마무리하고 가라 하시는 것 같았다. 주방 대청소, 유리창 닦기, 예배당 주변 청소, 밑반찬 만들기 등 여러 가지 일도 했다. 주님과 동행하며 일하며 누리는 뿌듯한 만족감이 가슴을 벅차게 했다. 내년 이맘때쯤, 가장 바쁜 대추 수확 철에 다시 오리라고 마음을 먹었다. 때로는 숨이 막히도록 바빴지만, 행복했던 순간들을 기억하며 선교 대추 사역에 동참케 해주신 주님께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