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채 / 7세
농장에 와서 좋은 경험을 많이 했다. 이순애 사모님이 해주신 맛있는 음식도 먹고 ATM 오토바이와 골프카도 타서 좋았다. 그리고 맛있는 대추와 과일들도 따서 먹고, 농장을 지키는 부흥이와 회복이도 만지고 닭, 영계, 메추라기에게 밥도 주고 알도 꺼내서 좋았다. 미국에 온 것 만으로도 기뻤는데, 이런 훌륭한 체험을 하고 또 이곳에서 자란 복숭아도 먹어서 더더욱 기뻤다. 난 복숭아 알레르기가 있었는데, 아마 농장의 유기농 복숭아를 먹고 다 나은 것 같다. 지루할 틈이 없었다. 토요일엔 시내에 나가거나 등산도 하고 소풍도 갔다. 앞으로는 인터넷만 많이 하지 않고 독서도 하고 공부와 태권도도 열심히 해야겠다. 그리고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고 방 청소도 열심히 해야겠다.
김은하 / 10세
농장에 오니 더울까 걱정했던 마음이 싹 사라졌다. 게다가 이곳에서 지내면서 재미있는 것이 너무 많아 인터넷 생각은 별로 나지 않았다. 그리고 토요일엔 박물관을 가거나 등산을 하거나 시내로 나가 지루할 틈이 없었다. 먹고 싶었던 과일들도 맘껏 먹을 수 있었고, 미국에 가면 꼭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던 소고기도 많이 먹어 정말 행복했다.
이곳에는 동물들도 많이 있다. 개 두 마리가 있는데, 암컷인 부흥(4살)이와 수컷인 회복(2살)이가 있다. 또 닭들과 메추라기도 있다. 특히 안아주면 가만히 안겨 있는 메추라기가 너무 귀여웠다. 이곳은 낮에는 무덥고 밤에는 춥다. 오전 9~10시까지는 시원했다가 오전 10시가 지나면 더워지기 시작한다. 비는 거의 오지 않는다. 하루의 일과를 마치면 농장 전체를 2-3 바퀴 산책한다. 산책할 때 하늘을 보면 날마다 다르게 변하는 노을의 색에 감탄 밖에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8시 정도가 지나면 완전 깜깜해진다. 그래서 밤에 하늘을 보면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별들을 아주 가깝게 볼 수 있다.
농장에서의 좋은 점은 정말 많지만 제일 좋은 것은 내 습관을 바꿀 수 있게 된 것이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다. 늦잠을 자서 아침식사 시간을 지키지 못할 때도 있었다. 더군다나 체조와 묵상 시간에는 나오지 못했다. “목사님, 사모님 죄송합니다”. 그래도 암송은 열심히 했다. 10점을 받을 때 성취감이 엄청 컸고, 10점을 다 못 받았을 때 속상해하기보다는 더 열심히 해야지! 라는 생각만 가득했다. (물론 속상할 때도 있었지만…) 대추 가시에 이마가 긁혀 영광의 상처도 났다. 사모님께서 마사이족의 후예라고 불러주셔서 재미있었다.
앞으로 한국에 돌아가서 인터넷만 하지 않고 독서도 열심히 하고 다른 취미도 가져보고 열심히 살겠다. 특히 노숙자 사역을 도와드리면서 어린 나도 복음을 전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복음을 전하고 싶다.
Dear, 소녀 같으신 이순애 사모님
항상 잘해 주시고, 맛있는 음식도 해주시고 여러 가지 경험을 많이 할 수 있게 해주셔서 너무너무 감사드려요. 성경 암송하며 틀렸을 때도 격려해 주시고 칭찬해주셔서 감사해요! 이것만으로도 충분한데 선물도 사주시고(별로 잘한 것도 없는데...) 너무 감사해요, 별로 많이 도와드지리 못해 죄송할 따름이에요. 힘드실텐데 챙겨 주셔서 감사해요. 사랑합니다. 사모님이 일하시는 모습을 보면 너무나 존경스러워요. 특별한 선물들 많이 주셔서 감사해요!
Dear, 슈퍼 마리오 이재환 목사님
목사님이 열심히 대추를 따시는 모습을 보면 제가 부끄러워져요! 한편으로는 나이가 드셨는데도 열심히 일하시는 모습을 보면 존경스러워요. 설교하실 때도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셔서 너무 재미있게 들었어요. 그리고 지금 “검은색이 아름답다” 재미있게 읽고 있어요. 죄송하지만 전 목사님보다 사모님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서 편지가 많이 짧아요. 죄송해요. 다음엔 더 많이 함께하기를 소망해요. 사랑하고 감사합니다. 특별한 선물들 많이 주셔서 감사해요.
김은결 / 13세
처음에는 사막 지역이라고 들어 너무 덥지 않을까 걱정이 많았다. 물론 날마다 땀이 내 몸을 적시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견딜 수 있는 30도~40도 사이여서 감사했다.
첫 주에는 일이 별로 없었고, 간간히 일을 도와드렸다. 며칠 지나니까 일하는게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점심에는 밥 먹고 쉬기 때문에 대추철이 오기 전까지는 한가한 시간을 보냈다. 첫 일주일은 하규, 인규와 놀아주는 것이 나의 일과여서 오히려 즐거웠다. 한국에 있을 때는 아침 일찍 일어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저절로 일찍 일어나게 되었다. 그리고 주말이 되면 박성재 선교사님께서 가이드를 해주시는 대로 놀러 갔다.
두 번째 주일에는 El Pollo Loco에서 점심을 먹고 박성재 선교사님과 처음으로 홈리스 사역을 했다. 그리고 무릎 기도회를 위해 이수현 선교사님 가족과 정민경 선교사님, 박주희 선교사님, 김나현 선교사님께서 농장에 오실 때, 이수현 선교사님께서 스테이크를 구워 주셔서 정말 맛있게 먹었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박성재 선교사님과 전영배 장로님과 이야기를 많이 나누어서 참 좋았다. 그날 무릎 기도회 때 박주희, 박숙희 선교사님 파송식도 하고, 우리 가족 기도 제목도 있어 감동을 받았고 참 감사했다.
이곳에서는 묵상을 6시에 하고, 묵상이 끝나면 아침 식사를 바로 해서 좀 더 부지런해졌다. Roberto 아저씨께 대추나무 가지 올리는 일을 배웠다. 이재환 선교사님과 Roberto 아저씨와 함께 일할 때 참 재미있었다. 대추를 딸 때는 신기했다. 겨우 두 주 지났는데 대추에 빨간색이 보였다. 대추를 딸 때마다 ‘자연은 대단하구나, 이걸 만드신 하나님은 얼마나 더 대단하신가’라고 생각했다.
오전 일을 끝내고 점심 시간이 오면 기분이 좋아진다. 날마다 다른 메뉴의 맛있는 점심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점심을 먹고 쉰 다음 사모님께서 도전을 주신 로마서 1장을 영어로 암송을 했다. 처음엔 과연 할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해보니까 외워져서 감사했다.
그리고 이주열 선교사님께서 오셨을 때 기도 모임을 하면서 많은 은혜를 입었다. 방언 기도를 하던 중 얼마 지나고 나서 내 마음속에 68이란 숫자가 떠올랐다. 한참을 기도한 후 끝나고 68이란 숫자가 어떤 의미인지 여쭤보았다. 그러자 이주열 선교사님께서 성경을 읽으신 후 의미를 아시겠다고 하셨다. 6은 타락한 인간을 뜻하고, 8은 새로운 시작을 뜻한다고 말씀하셨다. 즉, 타락한 인간을 새로운 시작으로 이끄는 사람으로 바꾸신다는 해석을 주셨고, 그것이 하나님께서 나를 선교사로 쓰신다는 것으로 이해했다. 그리고 이주열 선교사님께서 내가 선교사가 되기를 원하면서 기도했다고 하셔서 너무 감격스러웠다. 그리고 다음 날에는 이주열 선교사님의 간증을 들었는데 너무 너무 신기했다. 두 다리 길이가 5cm 차이나던 사람이 이주열 선교사님께서 기도 후 다리가 자라는 것을 직접 보셨다고 하셨다. 시간이 지난 다음에 된 것이 아니라 기도하고 나서 바로 자랐다고 말씀하셨다.
이렇게 나에게는 그저 노동 체험이 아니라 나를 쓰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도 들었던 좋은 기회였고, 좋은 순간들이었다. 특히 하나님께서 홈리스 분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걸 보았다. 한국에선 없던 기회를 주셨다.
“한국에 돌아가면 좀 더 성실히 살아가겠습니다. 홈리스 형제들을 잊지 않고 기도하겠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베푸신 은혜를 잊지 않고 받은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김은욱 / 14세
처음에는 오고 싶지 않았다. 동생들이 미국에 가 있는 동안 집에서 혼자의 시간을 즐기고 싶었다. 왜냐하면 우리 가족은 6명이라 나 혼자 있는 시간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미국에서 한 달 넘게 지낸다는 것은 즐겁게 들렸지만 우리의 목적지는 여행지가 아니라 캘리포니아 사막 한 가운데서 일하는 농장이고, 와이파이도, 내 또래들도 없는 곳이기에 더욱 그랬다. 게다가 자주 볼 수 없었던 MK 친구들이랑 한국에서 자주 만날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래서 처음엔 여기서 지내는 것이 장점보다 단점이 더 많을 것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버지와 함께 갈 수 없다니… 내가 어머니를 힘들게 할까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아버지가 외로우실 것 같았다. 농장에 가기 싫었지만 ‘누구나 겪기 드문 경험’ 이라는 사실에 의욕이 조금씩 생겼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나에게 특별한 경험이 될 것이라고 강하게 권유하셨다. 그래서 결국 가기로 결정했다. 캐나다를 거쳐 LA 본부에서 며칠간 머물고 농장에 도착했다.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한 것은 포도 따기였다. 원래 포도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막상 먹으니까 맛있었고 대추도 정말 달고 맛있었다. 게다가 한국에서는 비싸서 먹기 어려운 백도를 마음껏 먹을 수가 있다니… 먹는 것에는 전혀 문제없었다.
여기 머물면서 안타깝고 슬픈 일이 있었다. 정바울 선교사님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이었다. 이 농장으로 함께 차를 타고 왔던 진리 형에게 안타까운 일이 생기다니 유감이었다. 그러나 진리형은 아버지 추모 예배에서 자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도 슬프지만 영원히 지옥에서 불탈 미얀마 사람들 때문에 슬프다며 참석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자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미전도 종족을 위해서 애통하고 슬퍼하다니… 만약 우리 아버지께서 돌아가셨을 때에 나도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생각하며 눈물을 조용히 흘렸다. 영어로 로마서 외우기를 잘 해냈고, 노숙자들에게 복음 전도도 하며 나 자신이 자랑스러울 때도 있었다. 사실은 노숙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러 가기 싫었다. 두려웠다. 그 사람들이 복음 전하는 것을 거절하면 어쩌지? 한국에서 3번 정도 거절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분은 헛소리하지 말라고 했고, 또 어떤 분은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다는 증거를 보여달라고 했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영이신 하나님을 보여드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점점 복음 전하기가 두려웠었다. 노숙자들 중 한 사람이라도 날 위협하면 어떡하지?
하지만 집도 없고, 가족도 없는 이들이 지옥에서 불타는 것을 내버려 둘 순 없다는 생각에 복음 전하는 것에 대한 자신감과 열정이 생겼다. 특히 이주열 선교사님의 복음 전도에 대한 간증을 듣고 난 후에는 복음 전도가 즐거워졌다. 한 번은 열심히 복음을 듣고 있는 사람 앞에서 술 취한 아줌마가 방해를 하고 우리가 떠날 때는 뒤에서 우릴 욕했다. 하지만 오히려 기분이 좋아졌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도 불쌍한 자들에게 손을 내미셨고(우리가 악수하고 손을 얹고 기도해 줄 때 우리를 욕했다), 예수님을 위해 박해를 받는 자들에게 큰 상이 있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분이 좋아졌다. 빅토르벨리 장로교회에서 개최한 저녁 음악회에 참석하여 음악을 감상하는 동안 갑자기 윗배, 아랫배가 둘 다 아파 정말 고통스러웠다. 빨리 돌아가고 싶었지만 베드로전서 2장 24절을 떠올리며 간절히 기도했더니 결국엔 완전히 나았다.
아침에 체조를 마치면 모두 모여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묵상한 후에는 그 말씀을 토대로 제목을 짓는 것이 재미있었다. 조슈아 트리 공원, 빅베어 마운틴도 가보고 다른 동네도 다녀오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땀 흘려 일한 후에는 늘 이순애 사모님께서 정성껏 준비하신 맛있는 음식이 기다리고 있었으며, 일할 때에 이재환 목사님과 로베르토 아저씨께서 조언을 해 주셔서 이분들로 인해 일하는 지혜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노숙자 사역 때 내가 영어로 복음을 잘 전할 수 있도록 칭찬과 격려를 아끼시지 않는 박성재 선교사님께 감사했다. 비록 이곳에 지내는 것이 늘 재미있지는 않고 힘들 때가 있었더라도 내가 가는 곳마다 성령님께서 함께하시기에 결국엔 모든 것이 좋은 경험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가 험한 길을 다니거나 고난과 역경이 있을지라도 성령님께서 역사하셔서 좋은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이런 드문 경험을 겪었기에 난 절대로 평범하게 살기는 글렀다. 난 결코 절대로 평범하게 살지 않기로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