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살렘 훈련원 농장 체험 간증문 / 이옥 권사 (라스베가스 거주)

루선벨리에 있는 킹 살렘 훈련원 농장에 갈 생각을 하니 어린아이처럼 가슴이 뛴다. 마치 가족을 보러 가는 사람처럼 아침부터 서둘러서 집을 떠난다. 3시간이 걸리는 거리이지만 기쁜 마음으로 달려간다.

나는 어려서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한주도 빠짐없이 교회에 다녔지만 "구원받았느냐, 거듭났느냐"라는 질문을 받아보지 못했다.

루선벨리에 있는 킹 살렘 훈련원 농장에 갈 생각을 하니 어린아이처럼 가슴이 뛴다. 마치 가족을 보러 가는 사람처럼 아침부터 서둘러서 집을 떠난다. 3시간이 걸리는 거리이지만 기쁜 마음으로 달려간다.

나는 어려서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한주도 빠짐없이 교회에 다녔지만 “구원받았느냐, 거듭났느냐”라는 질문을 받아보지 못했다.

30년 전 출석하던 교회에 선교사님이 다녀가셨다. 집에 돌아와 그분의 말씀을 생각해 보니 정말 이해할 수가 없었다. 왜 이렇게 좋은 나라에 살면서 화장실도 없는 그런 가난한 나라를 찾아가서 억지 고생을 할까? 고개를 갸우뚱하며 스스로 질문해 보았다. 그리고는 나름대로 기도하기를 “하나님 제가 하나님을 잘 믿게 되거든 선교사로 보내지는 말아주세요”.

10년이 지난 후, 한국을 방문하게 되어 어느 조그마한 교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그 교회 청년들의 믿음이 정말 대단하게 보였다. 그 후 해마다 한국에 나가 정기적으로 그 교회에 출석하면서 청년들에게 영어를 가르쳤다. 여름 방학에 청년들이 필리핀으로 선교여행을 떠난다기에 나도 따라나섰다. 가난과 무질서가 난무한 그 땅에서 장마철이라 무릎까지 올라오는 흙탕물 길을 헤매면서 전도에 동참했다. 나 자신도 예수님을 잘 모르며 따라다닌 것이다.

그런데 창문도 없는 움막에서 사는 주민들의 청결하고 순전한 모습에 마음이 끌렸다. 하루는 화장실을 가야 하는데 비가 억수로 내렸다. 화장실이 허술하여 물이 줄줄 새는 뒷간에 우산을 들고 가야 했다. 언젠가 하나님께 기도드렸던 것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자진해서 화장실도 없는 나라에 갔던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또 가고 싶었다. 그 이후로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깨닫게 되어 ‘선교’라는 것이 마음 한구석에서 떠나지 않았다.

몇 해 전 라스베가스에서 함께 신앙 생활하던 여 집사님이 베트남으로 선교를 떠나면서 캘리포니아 어느 선교 단체를 통해 가게 되었다고 했다. 그래서 그 분을 따라 가본 곳이 컴미션이 운영하는 킹 살렘 훈련원 농장이었다. 여러 곳에서 봉사자들이 와서 대추를 따고 식사 당번도 하며 즐겁게 일하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무엇보다 그 수입을 복음이 필요한 곳에 사용한다는 것을 듣고 우리 부부도 이곳에서 봉사하는 것이 선교에 동참할 수 있는 아름다운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킹 살렘 훈련원을 다니며 배운 것은 내 일생에 매우 값진 것이다. 어느 곳에서 신앙생활을 하든지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선교사와 선교 현장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무릎 선교사’라는 것이다. 그동안도 여러 방법으로 선교에 동참했지만 무릎 선교사의 뜻을 알게 된 후로는 땅끝에 복음이 전파되면 주님이 오신다는 소망으로 열심히 선교에 관계된 일에 동참해 보려고 애를 쓰고 있다. 몇 년 전부터 가을이 되면 킹살렘 훈련원 농장에 가서 육체노동에 참여하면서 선교사님들과 잠시나마 공동생활하는 것이 손꼽아 기다려지는 연중행사가 되었다.

17년 전, 60세 되든 해, 주님 앞에 두 손 들고 “저는 주님의 것이요, 하나님은 저의 주인이십니다.”라고 선포하였다. 어느 곳에 있던지 항상 감사와 기쁨이 충만한 복을 누리고 살 수 있도록 늘 함께하시는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올려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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