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이 임하옵시며 11월호

여는글 - 대추들이 시원한 샤워를 했습니다

간밤에 비가 내렸다. 추수가 한창 진행되어 대추들이 빨갛게 건조되고 있는데 비가 오다니…  이를 어떡하나? 대추가 나무에 매달릴 때 비가 오면 좋지만, 대추가 건조될 때 비가 오면 농부에게는 걱정이 앞서기 마련이다. 그런데 올해는 벌써 비가 2번이나 내렸다. 비 오기 전까지만 해도 대추들이 건조대 위에 오손도손 모여 뜨거운 태양을 닮아가며 빨갛게 익어 가고 있었다. 나무에서 바로 따면 푸른색이었지만 이렇게 건조대에 올라가면 푸른색은 사라지고 오직 자줏빛 빨간색으로 변한다. 건조될수록 반짝반짝 발하고 향도 더해간다. 수북이 쌓여가는 대추들은 보기만 해도 먹음직스럽다. 그런데 비가 내렸으니 어쩐다? 그동안 열심히 마른 대추가 눅눅해질까 봐 농부의 마음이 무거워진다.

공동체 식구들이 타월을 가지고 나왔다. 소낙비가 그치자 샤워를 마친 대추들을 닦아주기 위해서다. 여러 곳에 흩어진 대추 건조대로 가서 한 알 한 알 물이 묻은 것을 닦아주었다. 대추 사이에 물이 고이지 않도록 닦다 보면 허리가 휘는지도 잊게 된다. 그래도 아무도 하늘을 향해 불평하지 않았다. 아무도 이런 중노동을 하는 것 때문에 속상해하지 않았다. 남의 일이 아니라 내 일이라는 자세로 흩어져서 대추를 닦는 모습이 매우 아름다웠다. 공동체의 힘이란 이런 것이다. 한마음과 한 뜻으로 주님의 일이라는 확신 가운데 힘을 쓰면 사람으로부터의 보상 이상을 얻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 부부가 겁도 없이 과일 농장을 시작하여 5년째 노동 공동체를 세워가고 있다. 두 사람으로는 절대 농장을 경영할 수 없다. 농장은 과일만 재배하는 곳이 아니다. 전기 기술, 건축 기술, 물관리 등 남자의 노동력이 절대로 필요하며 텃밭, 복숭아 등 과일을 손질하고 좋은 대추를 만들 때까지는 엄청난 여자의 손길이 필요하다. 나무에 달린 대추를 딸 때는 많은 자원봉사자가 필요하다. 대추를 말리고 돌리고 거두고 선별하는 것 등 생대추가 건조 대추가 되기 위해서는 수많은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주님의 동역이 가장 필요하다. 주님이 적절한 시간에 사람들을 불러 주시어 함께 일하게 하시며 믿음을 나누도록 마음을 움직이셔야 한다. 하나님의 땅과 나무들을 그 본연의 모습으로 가꾸려는 농부의 마음을 귀하게 보시는 것이 분명하다.

샤워를 마친 대추들이 깨끗하고 투명하게 되어 더 반짝거린다. 언젠가는 한번 목욕시키고 싶었던 내 마음을 주님이 아셨던 것 같다. 마치 나도 시원한 샤워를 즐긴 것처럼 상쾌하다. 몸이 가벼워진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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