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이 임하옵시며 2022년 9월호

여는글 - 하나님은 선교사들을 통해 새 일을 행하신다

아직도 지구상에는 어둠과 저주와 미신과 우상이 가득한 곳이 수두룩하다. 태어남과 동시에 저주와 공허함 속에 살지만 그렇게 사는 것이 얼마나 허무한지를 의식하지 못한 채 사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이들을 깨우기 위해 하나님은 사람들을 부르신다. 그 부르심에 응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교회는 다니며 빛과 진리 안에 살고 있다고 말은 하지만 거듭남의 기쁨과 영생의 소망이 불투명한 사람들이 많다. 가지고 있는 진리를 삶 속에서 실천하지 못한다면 어둠의 땅에 사는 사람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어둠이 너무 가득 차서 조그만 빛조차 두려워하는 땅이 너무 많다.

선교사를 이방 땅에 보내는 것이 그렇게 쉬운 것은 아니다. 미래에 이루어질 빛나는 소망이 없다면 보내는 자나 가는 자나 쉬운 발걸음은 아닐 것이다. 하나님도 예수님을 죄악이 넘치는 이 땅에 보낼 때 정말 힘드셨을 것이다. “어쩌자고 이 세상을 창조했는가?” 수없이 후회를 하셨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만들어 놓은 창조물이었기에 책임을 지셔야 하고 포기할 수 없었다. 하나님은 마지막 열정을 모두 모아 외아들을 이 땅에 보내야 했다. 그리고 하루도 편히 쉬지 못하시면서 아들의 일거수일투족을 향한 눈길을 끊임없이 쏟아부으셨을 것이다. 하나님은 그러한 아들을 33년 후 다시 만났다. 죽음이 끝이었다면 정말 허무했을 것이다. 이별과 헤어짐 뒤에 올 언약의 성취와 영광 때문에 자식을 포기할 수 있었던 것이다. 선교사의 부모들도 이러한 하나님의 심정으로 자식을 먼 이방 땅에 보낼 수 있으며 선교사도 이 영광의 날을 바라보며 가족 곁을 떠날 수 있다. 믿음이 없으면 아무도 이 일을 할 수 없다. 믿음은 신비한 것이다.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부활하심으로 승리하신 예수님은 지금 아버지 곁에서 이 땅에 복음으로 고난받는 자들을 위한 처소를 만드시며 그날을 기다리신다.

하나님은 모험하는 사람, 도전하는 사람을 좋아하신다.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새 일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성경에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이 일을 수행했다. 선교사도 성경의 인물들처럼 새 일을 행하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을 깊이 사랑함으로 모험의 길을 떠날 수 있다. 편안한 의자를 내어 던질 때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더욱 깊이 누릴 수 있다. 숙명을 적극적인 운명으로 개척해 나갈 수 있다. 나의 운명뿐만 아니라 한 국가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 그래서 선교사들이 밟는 땅마다 새로운 변화가 일어난다. 선교사의 이름은 어둠의 땅에 빛을 전달한 복음의 수령자로 영원히 하나님 나라에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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