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각오로 저항하고 있는 미얀마 사람들 / 정바울 & 정수자 선교사

대대로 내려오는 가난의 영, 전쟁의 영, 분열의 영이 떠나고 주님의 평화가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군부 쿠데타로 목숨을 걸고 투쟁하는 미얀마 땅

지난 1년 동안 코로나로 인해 온 세상 사람들이 힘든 시기를 겪었고, 아직도 진행 중인데, 이곳 미얀마에서는 불행하게도 군부 쿠데타가 일어났습니다. 지난 11월에 치러진 선거를 부정 선거라 모함하여 미얀마 군부가 정권을 잡은 것입니다. 이에 저항해 온 국민의 불복시위가 시작된 지 벌써 두 달이 넘었습니다. 양곤과 만달레이 등 큰 도시로부터 전국으로 퍼진 반 군부 시위 단체가 목숨을 걸고 투쟁하는 것을 보면서 그저 마음이 아프고 눈물이 납니다. 지난 60년 동안 군부 독재로 억압받고 힘들게 살다가 겨우 민주주의로 살만하다 했는데 군부가 다시 정권을 잡았으니 국민들이 이에 불복해 목숨을 걸고 투쟁하고 있는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평화 시위로 무차별 진압에 대항

10대 젊은이들이 손목에 혈액형과 전화번호를 써 놓고 죽을 각오로 저항하며, 시민들은 안전모, 보안경을 쓰고 벽돌, 모래 자루, 드럼통으로 바리케이드를 치고 평화 시위를 하고 있습니다. 상점 주인들은 안전모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만큼 가져가고 반드시 살아오겠다고 약속해 주세요.”라는 문구를 붙여 놓고 시위대를 후원하고 있습니다. 군인들과 경찰들은 최루탄, 새총, 총과 폭력으로 시위대를 무차별하게 진압하고 있습니다. 군부는 인터넷과 언론들을 조종하여 하루에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을 정했고, 군부 불복 사위 단체와 연합하여 모든 공무원, 은행, 교사, 사업체가 파업한 상태라 일상 생활에 불편함은 많아지고 있습니다. 2월 2일부터 시작한 군부 불복 운동(Civil Disobedience Movement)으로 인해 현재까지 2,000여 명이 투옥되었고 200여 명이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다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처절히 대항하는 모습을 보며 눈물의 기도를

인간으로 태어나 최소한의 인권은 누리고 살아야 하는데 미얀마 사람들은 가난을 숙명으로 받아들이며 살아왔습니다.  이들이 얼마나 억눌리고 힘들게 살았으면 이리도 처절히 저항하는지 이해가 됩니다.  미얀마 사람을 사랑하는 선교사로서 너무 마음이 아프고 안타깝고 눈물이 납니다.  같이 참여는 할 수 없지만, 분노하고 애도하는 일 밖에 할 수 없지만, 날마다 눈물로 기도하고 있습니다. 미얀마에 군부 독재가 무너지고 완전한 민주주의가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미얀마에 대대로 내려오는 가난의 영, 전쟁의 영, 분열의 영이 떠나가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 나라에 주님의 평화가 속히 임하게 해 달라고…

주님 앞에 조용히 무릎 꿇고 잠잠히 그분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 봅니다. 말로 할 수 없는 힘든 시기를 견디고 있는 미얀마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큰 뜻이 무엇일까 생각해 봅니다.  우리가 어떻게 이들을 섬겨야 하는지… 주님의 은혜로 저희 사역은 정상적으로 진행되고 있고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열매가 보이는 것을 볼 때 그분의 사역은 그 분이 하신다는 걸 피부로 실감합니다. 앞으로의 사역을 위해서 기도로 준비하면서 주님이 하실 일들을 기대해봅니다.  이곳 열악한 나라 미얀마 사람들을 속히 구원하여 주소서!

2021년, 미얀마에서 일어나야 할 주님의 사역

2021년 간절한 소망을 생각하면서 저희들의 영육 상태를 다시 한번 점검해 봅니다.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여호와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는데 과연 2020년 한 해 동안 정녕 그랬는지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지 않았을지라도 부족한 저희에게 한 해 동안 “주님의 은혜가 어찌 그리도 큰지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는 고백이 저절로 나옵니다. 코로나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 같은 2021년에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선교를 더 잘 할 수 있을까 고민해 봅니다. 글로 쓰면서 정리하게 됨을 감사드립니다.

고아원(프라미스 홈) 사역

미얀마 선교 사역 중 하나로 여러 지역에 고아원 겸 교회를 세우고 있습니다. 미얀마에서는 고아원을 하게 되면 자연적으로 교회가 생기게 됩니다. 정부에서도 고아원 운영에 대해 굉장히 우호적입니다. 일단 고아원을 시작하면 그 안에서는 종교 생활을 자유롭게 할 수 있습니다. 현재까지 두 지역에 교사 3명과 아이들 20명을 돌보는 고아원이 있습니다. 너무 크지 않은 규모에 가족 같은 환경에서 지성, 인성, 영성을 겸비한 차세대 리더들을 양성하는 것을 목표로 아이들이 잘 자랄 수 있도록 섬기고 있습니다. 프라미스 홈이 벗마욱(그두족/그난족)과 삔우린 1 & 2(나가족) 운영 중입니다. 원또는 현재 건축 중인데 2021년 4월에 개원할 계획입니다. 이곳은 부지가 넓은 편이라 자급자족할 수 있도록 양계와 함께 야채 종류를 재배할 계획입니다. 

센타의 공동생활을 통한 자립 선교 목표

저희 센터에서는 30여 명이 공동 생활을 하면서 예마웅 펠로우십 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현지에서 자립 선교하는 것을 목표로 하여 돼지 농장을 운영하고 있는데, 한국 녹색부농단체와 협력하여 열심히 배우고 있습니다. GREEN MYANMAR (현지 NGO) 허가가 나와 2021년에는 온누리 <더 멋진 세상> NGO 단체와 협력해서 더 활발히 사역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다면 더 많은 지역에 고아원과 교회를 개척하는 것이 저희의 간절한 소망입니다.

사역자 배출을 위한 프로미스 홈 사역

2021년 6월쯤 저희가 거주하고 있는 예마웅 라이프 센터에 샨족과 네팔족을 위한 프라미스홈을 건축할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저희 센터 부지가 다소 넓어 공동체 사역뿐만 아니라 프라미스홈 사역을 같이하는 것이 기도제목입니다. 많은 아이들이 와서 주님을 만나고 주 안에서 잘 자라 미얀마 복음화를 위해 귀히 쓰임 받는 주님의 제자들이 많이 배출되었으면 합니다.

아도니람 저드슨의 헌신과 희생을 기억해 주십시오

미국에서 해외로 파송한 최초의 선교사이자 인도 땅을 밟은 최초의 선교사인 저드슨은 1788년 8월 9일 매사추세츠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또래 아이들보다 비범하였으며 16세에 브라운 대학을 조기 졸업한 수재였다. 앤도버 신학교를 졸업한 후 25세 나이가 되던 해, 낸시와 결혼하여 인도를 거쳐 미얀마로 향했던 때가 1813년이었고, 65세에 하나님 품에 안기기까지 미얀마의 복음화를 위해 불꽃같은 선교의 삶을 살았다.

철저한 불교 국가 미얀마에서의 선교사로서의 삶은 심한 고통과 박해, 고난의 연속이었다. 정부의 감시와 방해, 그로 인한 투옥, 족쇄가 채워진 채 어둡고 축축한 감옥에서 해충의 공격과 열대병으로 수없이 사선을 넘기곤 하였다. 미얀마에서 출생한 첫째가 생후 6개월 만에 열대병으로 죽었고, 병약한 채로 출옥한 그의 아내도 시름시름 앓다가 곁을 떠났다. 동냥젖으로 간신히 키우던 둘째 딸마저 황망히 사망했다. 두 번째 아내 사라, 세 번째 아내 에밀리 사이에 13명의 자녀를 두었으나, 2명은 출산 중 사산하고 5명은 열병에 쓰러졌다. 저드슨과 그의 아내들과 어린 영혼들은 이처럼 젊은 나이에 열악한 선교지에서 영양실조와 폐병과 열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저드슨 선교사는 정부의 반대와 통제가 심각하면 조용히 미얀마어를 습득하여 성경을 번역했고, 단속이 느슨하면 곳곳에 다니며 복음을 전했다. 6년 만에 첫 개종자를 얻게 되었고, 7년째 십여 명의 미얀마인에게 침례를 베풀었다. 미얀마어로 성경을 번역했고, 미얀마 영어 사전을 완성했을 뿐만 아니라 개척 교회를 설립하여 7,000여 명이 넘는 성도들을 개종하는 선교의 열매를 가질 수 있었다. 저드슨 선교사가 번역한 미얀마 성경은 지금까지도 거의 손볼 곳이 없을 정도로 완벽한 번역으로 아직도 사용되고 있다.

병세가 점점 깊어지자 치료를 위해 미국 행 배를 탔던 그는 여정 중 배에서 사망했고, 벵골만 바다에 수장됨으로 미얀마 선교사의 삶을 마치며 하나님 곁으로 갔다. 그간 미얀마는 버마족과 로힝야족 간의 인종, 종교, 경제적 갈등으로 인한 탄압과 보복으로 어지러운 상태에 놓여 있었다. 그런데 요즘에는 군부 세력의 탄압 정치에 항거하는 국민들의 민주화 운동이 격화되어 온 나라가 고통받고 있으며 사람들의 아까운 목숨을 잃어가고 있다. 미얀마를 사랑했던 저드슨 선교사의 헌신과 희생을 기억함으로 저들의 분노가 용서와 화해로 해결되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