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 두번째 탐사 by 이재환 선교사

2022년 2월, 2번째 사우디 탐사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의 모습이 재연된 영화관의 세트장 같은 곳
사람은 침묵하지만, 돌들이 역사를 증거하며 소리 지른다

지난 2월, 다시 사우디아라비아를 정탐하게 되었다. 여행을 위한 모든 여건을 갖추기가 매우 복잡하고 힘들었다.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이었다. 사우디, 요르단과 아랍에미레이트를 다니는 동안 다섯 번의 PCR 검사를 해야 했으며 백신 검사 확인 자료가 3차례나 필요했다. 코로나 방역으로 인해 사우디의 입국이 매우 까다로워졌으며 입국 절차도 단순하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 27명의 동료들이 모든 것을 미리 잘 준비하여 긴 여정을 아주 즐겁게 하였다. 꼭 2년 만에 사우디 땅을 다시 밟게 된 감격을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나를 감격시킨 몇 가지를 적어 보려고 한다.

사우디의 문이 열린 것은 바로 선교를 위한 것이다.

이슬람교는 622년에 마호메트가 가브리엘 천사로부터 계시를 받아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때 초승달이 떴던 때라고 하여 이슬람의 심볼이 ‘초승달’이 되었으며 이때를 ‘하즈’ 라고 불렀다. 이날을 원년으로 따지면 지금으로부터 꼭 1400년이 흘렀다. 이는 마치 1400년 만에 복음의 문이 열린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난 2019년 8월에 그동안 오랫동안 기도하며 기다렸던 사우디를 마침내 방문하는 특권을 누렸던 것이다. 그리고 지난 2월에는 정탐꾼 28명이 7대의 랜드크루저에 몸을 싣고 진짜 시내산이라고 불리우는 새로운 정보를 따라 출애굽의 광야를 탐사하게 된 것이다.

사우디에는 아직도 <미디안> 땅을 비롯한 여러 지역들이 성경에 나오는 지명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3500년이 지난 이곳에 아직도 <모세의 우물> <모세의 오아시스>가 있으며 <모세의 산>과 <모세의 골짜기>라는 지명 이름이 그대로 존재하고 있다. 이 모든 지명들이 3500년이라는 긴 세월이 흘렀어도 홍해 근처의 땅에 그대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매우 신기하였다. 이것이 우연의 일치라고 말할지라도 그 땅을 밟으며 출애굽의 과정을 공부하고 경험하는 일은 특별한 축복이었다. 마치 출애굽 영화를 만들기 위한 세트장에 온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하였다.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간 걸었던 광야를 비록 차를 타며 지나갔지만 매우 생생한 경험을 하는 축복을 누릴 수 있었다. 어떤 이는 너무도 오래된 3500년 전의 것들이 아직도 남아 있다는 것은 도저히 믿을 수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나는 마치 이곳이 영화를 촬영하기 위한 세트장 같다고 말하게 된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 사람들로부터 따뜻한 친절과 융숭한 대접을 받으며 매우 아름다운 교제의 축복을 누렸다. 우리도 이들을 만나는 것이 신기하고 기뻤듯이 이들도 한국인을 이렇게 많이 만나는 것을 신기하게 생각하였을 것이다. 어디를 가나 대환영을 해주었으며 기쁨으로 맞이해 주었고 환한 미소로 즐거움을 감추지 못했다. 히잡을 쓴 여인들도 거리낌 없이 함께 사진을 찍고 대화를 나누며 부끄러움이나 거리감을 두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새로운 시대의 문을 열은 것 같았다. 이는 마지막 미전도 종족의 문이 열리는 것이라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아직도 가난하게 사는 베두인족들을 보며 도시와 시골의 거리감을 느끼는 낙후된 모습을 보았지만 오히려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을 보게 되었다. 마지막 날이 아주 가깝게 다가왔음을 보며 복음을 전할 생각에 가슴이 뛰었다.

성경에 기록된 모습 그대로 시내산이 아직도 당당하게 존재하고 있다. 산꼭대기의 시내산은 불에 탄 그대로 윗부분만 검게 타 있다. 이곳 사람들도 여전히 이 산꼭대기를 ‘불에 탄 곳’이라는 <마클라 산>이라고 부르고 있다(출 19:18). 산이 험해서 우리는 끝까지 등반을 하지는 못했다. 그런데 Peter라는 호주 그리스도인을 만났는데 그로부터 탄 돌 하나를 선물로 받았다. 벽돌을 불 속에서 구워낸 것처럼 밖은 검었고 안은 흙 색깔이었다. 산 중턱에는 12지파가 하나님과 약혼식을 했던 돌들이 남아 있었다. (출 24:4) 12개 중의 일부인 9개의 기둥이 아직도 남아 있고 번제를 드린 돌로 추정되는 돌 제단과 넓은 장소도 보았다.

세월이 지난 후에 누군가 만들었다고 의심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살지 않는 이 황량한 곳에 누가 이런 것을 세웠겠는가? 물론 현재는 몇 가구가 살고 있는 작은 동네가 있지만 이들이 이런 일을 했을 것 같지는 않다. 금송아지를 섬겼을 것이라 추정되던 제단의 돌 주위에는 이집트에서 신으로 섬긴 소들이 많이 암각 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침묵하지만 돌들이 소리를 지르고 있는 것 같았다. 또한 여기저기 숨겨져 있는 작은 맷돌들이 만나를 갈던 소리를 내는 듯했다. 이처럼 암각화들과 맷돌들이 과거의 역사를 토해내고 있었다. 돌들의 외침이 가슴 속으로 메아리치며 들려오고 있는 현장을 보고 있는 감격이 벅차올랐다. 시내산의 여정을 가능하도록 다시 한번 이 기회를 허락하신 주님께 감사드렸다.

시내산 아래의 금송아지를 우상으로 섬겼던 제단을 보았다. 이로 인해 불순종한 3,000명의 사람들이 레위인에 의해 살상되는 사건이 일어났고 그들의 무덤이 그곳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형편없는 돌 비석으로 세워져 있는데 그때의 참상을 상상할 수 있었다. 말없이 서있는 공동묘지를 볼 수 있었던 것은 마지막 심판을 보는 미래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영국의 처칠 수상은 “과거의 역사 속으로 깊이 들어가 보는 것은 미래를 더 멀리 볼 수 있기 때문”이라는 말이 새삼 느껴진다. 바로 이 광야의 쓰라린 역사는 바로 현실과 미래를 보는 거울이며 본보기이기 때문이다. 아! 불순종의 그리고 불신앙의 과거의 심판의 모습을 보면서 미래의 심판을 보며 가슴이 쓰렸다.

성경에서 말하는 시내산이 어디에 있는가?

시내산이 어디인가는 누구도 모른다. 학자들에 의하면 16군데라고 추정한다. 누구도 모를 일이다. 하나님만이 알고 있는 일이다. 그러나 내게는 이렇게 영화의 세트장처럼 잘 준비된 시내산과 광야의 여정을 이곳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체험해 보는 것이 신기할 뿐이다. 바울이 갈라디아 4장 25절에서 말씀하신 것을 연상해 본다. “이 하갈은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산으로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으니…”

이곳 사우디아라비아에 있는 산이 시내산이 아니라고 해도 좋다. 성경에 쓰여진 그대로를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학습상 매우 현실적이라고 느끼게 된다. 마침내 유대인들도 이곳을 다녀갔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들에 의해 성경에서 말하는 시내산이 사우디아라비아에 있다는 사실이 더 가깝게 확인되기를 바란다.

어느 쪽 홍해 앞 바다로 이스라엘 백성이 건넜는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산에 도착한 때가 애굽을 출발하여 약 3개월이 지난 즈음이었으며 이 산에 머물러 있던 기간은 약 11개월 5일간으로 보고 있다. 이들이 애굽을 떠난 날이 1월 14일이기에 정확하게는 3개월보다 더 빨리 도착하였을지도 모른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3일 만에 광야 끝, 에담에 도착하였으며 뒤쫓아오던 애굽 군대와 누웨이바에서 맞닿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날짜 계산을 할 수 없는 불가능을 기적으로 계산할 수밖에 없다. 성경은 분명히 애굽의 병거 600대와 마병의 군대가 추격했다고 한다. 더구나 이스라엘 백성 250만 명의 사람들이 홍해를 건너기 전에 머물 수 있었다는 곳이 <아카바이만>이 보이는 누웨이바이어야만 현실적으로 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김승학 장로님의 저서 <떨기나무>에는 미국의 탐험가(론 와이어트)가 <아카바만> 바다 밑에서 많은 것들을 발견했다고 말한다. 군대를 싣고 왔던 애굽의 마차의 모양과 마차 바퀴를 발견했고, 솔로몬 왕이 출애굽의 기념으로 세운 큰 돌기둥이 이집트 쪽과 사우디 쪽에 세워져 있는 사진을 게재했다. 사우디 쪽은 근세에 누군가가 돌을 제거해 버렸지만 그 돌기둥의 흔적은 아직도 아카바만 사우디 쪽에 남아 있다는 정보가 있다. 나는 이런 문제는 하나도 어려움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시간과 흔적은 말하고 있지만 오히려 성경은 분명히 “광야의 끝 에담”에 이르렀다고 말하고 있다. (출 13:20) 만약 수에즈 운하 쪽의 홍해 바다를 말한다면 결코 ‘광야의 끝’이라고 표현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였다고 했으므로 밤도 낮처럼 도주가 가능했을 것이며 이 표현을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라고 말씀하시고 있음을 미루어 본다면 충분히 가능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십계명을 어떤 문자로 기록하셨을까?

십계명에 기록된 문자는 어떤 글자였을까? 이 질문이 나에게 참으로 큰 도전이 되었다. <Tim Mahoney>가 만든 유튜브를 보며 이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가게 되었다. “The Evi-dence of Patterns”라는 영상이었다. 이 사람은 어려서부터 이 문제에 대한 호기심을 감출 수 없어서 평생 그 일에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세상은 이렇게 말한다. “기독교는 가짜다. 어떻게 히브리어 문자가 없던 시절에 (출애굽은 주전 15세기, 주전 약1450년 대쯤 됨) 십계명과 율법이 기록될 수 있었는가?”라고 비아냥거렸다. 그러나 <Tim Mahoney>는 성경이 확실한 하나님의 정확무오한 말씀임을 믿고 하나님께서 직접 십계명을 적었다고 하는 것을 증명해 보기를 원했다. 그래서 그것을 밝히기 위해 많은 시간과 땀을 흘리게 되었다는 그런 영상이었다. 세상의 학자들은 히브리어가 주전 7세기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글자가 없는 때에 어떻게 “십계명과 율법이 문자로 기록되어 문서로 남게 되었는가?” 라는 질문도 그 영상에 담겨 있었다. 마침 이때에 한국에서 출판된 <떨기나무>를 읽으며 나에게도 사우디에 숨겨져 있는 궁금증을 향한 불이 붙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성경은 틀림없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학자들의 이론을 뛰어넘는 사실이 존재한다는 것을 나도 믿었다. 이처럼 나의 시내산에 대한 관심은 바로 십계명이었다. 이것이 나를 그곳으로 인도하게 된 동기였다.

성경은 구전으로도, 히브리어로도 쓰여지지 않았다. 어떤 구약학자는 십계명과 율법은 ‘구전’되었던 것이었다고 말한다. 어떤 학자는 히브리 문자가 만들어진 주전 7세기에 편집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게 단정한다면 성경은 성령에 감동된 책이라고 말할 수 없다. 나는 이것을 받아드릴 수 없었다. 이곳이 진짜 시내산이라면 틀림없이 무슨 글자든지 글자의 형태가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모세는 출애굽의 리더가 되기 위해 80년의 훈련을 받았다. 모세의 일생을 살펴보자. 그는 왕궁에서 40년을 보냈다. 그는 이 40년 동안에 최고의 학문을 연마했을 것이다. 많은 언어도 배웠을 것이고 지도자로서 자격을 갖추는 훈련을 받았을 것이다. 그런 그가 살인 사건에 연루되어 사우디의 미디안 땅으로 도주하게 되었다. 이곳에서 아내를 만났고 이드로의 집에서 80살이 될 때까지 아주 평범한 양치기로 생을 보내었다. 현재도 이곳을 미디안 땅이라고 부르고 있으며 모세의 우물, 혹은 모세의 오아시스라는 이름으로도 그 지역을 부르고 있는데 이로써 역사적인 증거가 확실히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나는 더 확실한 증거를 찾기 위해 시내산의 모든 바위를 살피기 시작했다. 많은 암각화를 발견할 수 있었지만 글자 모양을 하고 있는 아무런 것도 찾을 수가 없었다.

리야드 국립 박물관에서 <타무딕>의 존재를 확인했다. 리야드의 국립 박물관에 가서 놀랍게도 주전 15세기에 여러 문자들이 존재했다는 것을 발견했다. 바로 그 문자들이 새겨진 비석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박물관 직원은 이 문자들이 아랍어의 원조라고 설명했다. 이 문자는 모세가 살던 동네 ‘알바다’에서 사용된 것이라고 그곳 박물관에 기록되어 있었다. 김승학 장로님이 그 동네에서 <모세의 얼굴>이라는 손바닥만한 형상의 사람 얼굴을 구한 것이 있는데 그 얼굴의 앞면과 뒷면에 4개의 글자가 기록되어 있었다. 그 글자는 “야웨”라는 <타무딕> 언어였다. 내가 십계명의 문자가 <타무딕>이 아니라도 문자가 분명히 존재했다는 것을 결코 의심하지 않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그렇다, 모세는 <타무딕>이 존재했던 그 당시에 사우디에서 40년을 살았다. 이스라엘 백성 중에는 이 정도의 교육을 받은 자가 있을 수 없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노예 생활 430년 동안에는 학교도 배움터도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시내산에는 수많은 암각화가 조각되었지만 기록된 글자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모세만이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 낼 수 있었다. 글자를 아는 사람은 모세가 유일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하나님의 섭리는 정말 놀랍다. 살인자가 되어 비전도, 꿈도, 희망도 없던 그를 불러 애굽으로 보내어 출애굽을 이루게 하는 그 과정이 놀랍기만 하다. 궁중에서의 40년, 그리고 광야에서의 40년을 보내지 않았다면 출애굽 사건을 성취할 리더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가 아니었다면 십계명과 율법을 받아서 기록하고 남길 수 있는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결국 80년의 훈련을 받은 모세는 엄청난 고난의 길을 걸으며 엄중한 책임감을 안고 힘든 일들을 경험하는 지도자가 되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친히 기록하신 십계명을 던져 버린 사건은 슬픈 일이다. 이로 인하여 불신앙의 3,000명의 백성들이 레위인에 의해 죽임을 당하였다. 그들의 무덤을 찾아 가까이 가 보았는데 글씨가 적히지 않은 채 자연석으로 서 있는 비석들이 슬펐던 역사를 되돌아보게 하였다.

광야 길은 험하고 힘들어 모든 것이 짐이 된다

비록 자동차로 단 4일 동안 달려 느보산까지 가게 되었지만 40년의 광야의 여행을 저울질할 수 있을 만큼 고된 것이었다. 광야에서의 생활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만나가 없었다면, 르비딤 바위가 터져서 물이 나오지 않았다면, 옷이 낡고, 발이 부르텄다면 그들은 단 하루도 생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정상인의 눈으로 본 광야는 말이나 글로 적어 내려가기에는 엄청난 한계를 느낀다. 너무도 무리가 될 것 같다. 광야를 직접 경험하지 않았다면 광야의 영성을 가르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만나를 통한 양식의 교훈 속에도 참으로 깊은 진리가 숨겨 있다. 만나는 단 하루를 위한 일용할 양식이었다. 그러나 안식일을 위한 만나는 이틀 동안 썩지 않았다. 이 만나가 약속의 심볼인 법궤 안에 들어갈 때는 영원성을 가지는 만나로 변하여 영원히 썩지 않는다는 것이다.

믿음을 구하는가? 광야의 삶을 사모하자

이제 이 광야의 생활을 신약의 우리 시대로 가져가 보자. 놀랍게도 이 광야의 생활은 우리의 가장 중요한 삶의 모양을 보여 준다. 주님이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 이 광야에서 진정한 광야의 생활을 40일 동안 금식으로, 기도로, 인내하며 샘플로 살아 보이신 것이다. 이 고난의 기간에 사탄은 여지없이 찾아와 주님을 유혹하였다. 돌로 떡을 만들고, 높은 산에서 뛰어내리고, 사탄에게 경배하면 모든 것을 주겠다는 거짓 약속으로 유혹한다. 바로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날마다 겪은 유혹이었다. 스페인의 ‘Camileo de Santiago’ 순례길을 걸은 어떤 사람의 글에 “요지도 짐이 되었다.”라는 말이 생각난다. 재물의 욕심은 누구나 가진 것이다. 그러나 이 40일의 광야의 여정 기간 모든 것이 짐이 되었을 것이다. 광야는 바로 무소유의 기쁨을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최소한의 것만 가져야만 자유할 수 있는 여정이 되었을 것이다.

바울의 광야의 영성은 고전 10장 1절로부터 시작된다.

“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침례를 받고, 다 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으며,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너무도 멋진 영성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에서 전무후무한 사건을 경험했다. 바다가 갈라졌다. 마른 땅을 밟으며 홍해를 건넜다. 거짓말 같은 현실이었다. 이것은 불가능한 자연적 원리일 것이다. 이것을 바울은 “이스라엘 백성이 세례를 받은 것”이라고 말한다. 첫번 영성의 샘플이다. 우리가 세례를 받았을 때 이런 느낌을 가지고 있었을까? 내가 홍해 바다를 건넌 것과 같은 동일한 느낌을 세례를 받으며 체험했는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하는 기쁨이 어땠을까? 죄에서 탈출하여 자유의 나라, 미디안 땅으로 가면서 감격과 환희와 감사가 넘쳤을 것이다. 그와 같은 신앙이 내게도 있는가? 만나는 기적의 음식이다. 매일 주시는 하루분 양식과 주말이면 주시는 이틀 분의 양식, 그리고 결코 썩지 않는 약속의 만나가 그리스도로부터 나오는 양식이라는 사실을 가지고 주기도문의 일용할 양식의 감격을 가지고 살고 있는가? 바울은 이런 우리의 신앙을 바로 광야의 영성으로부터 유추하며 우리의 삶의 영성으로 거울로 삼아 본보기로 삼기를 원하고 있다. 금 송아지를 만들어 하나님을 대신하다가 3,000명이 레위인에 의해 집단 처형되었다. 죄와 불신앙은 심판의 대상이다. 결국에는 사망에 이르는 것이다.

인간은 전적으로 무능력하고 스스로는 희망이 없다

기적이 아니면 하루도 살 수 없는 곳이 광야이다. 하나님 없이는 하루도 생명을 부지할 수 없다. 이것이 광야이다. 우리는 피조물이고 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신 주인 되시는 분이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대적한 이스라엘은 불신앙의 결과로 광야에서 40년 동안을 헤aoTek.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 20살이 넘은 세대는 모두 광야에서 생을 마쳤다. 40년 동안 죽은 사람의 평균을 낸다면 약 85명의 사람이 매일 사망하는 줄초상을 경험해야 했다. 38년간을 요르단 광야에서, 아라비아 광야에서 헤매었던 것이다. 확실한 것은 이 광야가 아니었다면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또한 인간이 얼마나 부패한 죄인인가를 알지 못했을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기적을 순간순간 맛보았고 하늘의 만나를 날마다 먹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의 거룩하심 앞에 서서 영광의 구름 기둥과 불기둥을 보면서도 바른 신앙에 서 있지 못했다. 인간이 얼마나 전적으로 무능력한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광야는 최고의 학교... 광야는 지성소

이번 여행은 최고의 학교에 입학하여 최고의 선생을 통하여 최고의 가치 있는 근본 원리를 배우는 기회가 되었다. 광야의 영성을 몸소 보여주신 주님을 이해할 있게 되었다. 바울이 말하는 광야에서의 풍요로운 감격과 감사와 순종, 그리고 광야를 지성소라고 부르는 어원의 의미를 있을 같았다. 철저하게 하나님을 알아야 하고, 믿어야 한다. 하나님만을 섬겨야 하고 경배해야 한다. 경외하는 것이 생명이다. 나는 철저하게 악한 본성을 지닌 죄인이며, 무능력하여 스스로는 희망이 없음을 광야에서 다시 보게 되었다.

광야의 영성은 영생의 물을 마시고 사는 것이다하나님의 도움인 소위 자연을 깨는 파국적 개념의 기적이 없다면 하루도 생존이 어렵다는 것을 배웠다. 그러나 순종하고 복종하고 따르는 자는 영원한 복지인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을 알게 되었다. 홍해 바다를 건넌 것과 세례를 받은 것이 동일한 것이라면 사함의 세례는 너무도 감격적이다. 만나가 없다면 하루를 없는 모습 속에서 주기도문의 ‘일용할 양식’을 이해하게 되었다. 수가성 여인에게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네가 내가 누구인지 알았다면 내게 물을 구하였으리라. “내가 주는 물은 한번 마시면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의 영생의 물을 마시고 사는 자는 최고의 영성으로 있는 것이다. 사우디에서 운전을 담당한 사우디인 여행 가이드를 위해 간절하게 기도해 것은 생애의 벅찬 기쁨이었다.

 

 

평생에 두고두고 광야의 영성을 가지고 것이다. 나의 연약한 본성을 거스리어 요지도 짐이 되는 세상 것을 욕심내지 않고 선교를 통해 오는 M2414 성취하기 위해 최선의 삶을 살겠다고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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