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를 3번 갈아타며 24시간의 비행을 마치고 기대 반 두려움 반으로 레바논 땅을 처음 밟았다. 귀로만 듣고 인터넷으로 얻었던 정보들을 눈으로 확인하면서 이 땅을 향한 아버지의 마음을 느껴 보기를 원했다.
“다리는 순금 받침에 세운 화반석 기둥 같고 생김새는 레바논 같으며 백향목처럼 보기 좋고” - 아가서 5장 15절 -
레바논의 어제 - 중동의 진주
레바논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이다. 서쪽 해안 지역은 지중해를 끼고 있으며 한 가운데 산맥이 흐르고 있어서 도심을 떠나면 숲이 드러난다. 중동에서 유일하게 푸른 초목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성경에 자주 등장하는 ‘두로’와 ‘시돈’ 항구가 있어 해양 무역을 통해 엄청난 부를 축적하였던 곳이다. 얼마전 까지만 해도 중동의 파리(진주)라고 할 만큼 경제와 문화를 이끌어 가는 잘 사는 나라였다. 지금도 겉으로 보기에는 아름답고 평화로워 보였다. 중동에서 유일한 민주주의 국가이며 기독교를 인정하여 입국이 매우 수월하였다. 기독교(천주교) 분포도가 서구권 국가보다 높다고 말할 수 있다. 이스라엘이 남쪽 경계선에 접해 있고 북쪽과 동쪽은 시리아와 접해 있다.
레바논의 수도는 ‘베이루트’이다. 영토가 매우 작아 이스라엘의 영토의 반 정도이며 경기도 사이즈와 비슷하다. 인구는 경기도 주민의 약 절반 정도인 약 560만 명이다. 고대에는 전국이 백향목 숲으로 덮여 있었으나 현재는 국토의 약 13.4%만이 산림지이며 건조한 여름철에는 산불이 잦아 국가의 상징과도 같은 백향목이 거의 남아나지 않은 형편이다. 레바논 사람들은 페니키아인의 직계 후손으로 이사야 시대에 이미 지중해 연안의 각국과 해상 무역을 담당했던 부요와 풍요의 상징이었으며 우상 숭배와 세속 문화의 발달로 심판을 받을 것이라는 예언이 담겨 있는 땅이다.
레바논의 현재 – 최악의 경제 위기
그런데 금세기 최악의 경제 위기 속에 레바논이 크게 망가져 가고 있다. 레바논의 경제난은 지난 2019년 시작되어 코로나-19 대유행과 2020년 베이루트 항구 대폭발, 우크라이나 전쟁 등의 악재를 만나면서 깊어졌다. 세계은행(WB)은 레바논의 경제 위기를 19세기 중반 이후 세계 역사에서 가장 심각하고 장기적인 불황으로 진단했다. 레바논은 전례 없는 경제위기와 물가 급상승으로 국가적 비상 상황에 놓여 있다. 인구의 50% 이상이 빈곤으로 고통받는 가운데, 수도 베이루트는 2년 전 폭발로 도시 절반 이상이 파괴된 이후 아직도 재건 작업을 진행 중이다. 물과 위생 시설은 파괴되었고, 병원을 포함한 공중 보건 서비스도 마비 된 지 오래이다. 이성적으로는 도저히 상상을 하거나 이해할 수 없는 상태가 레바논의 현실이다.
레바논은 국가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종파가 18개나 되는 나라이며, 그 종파들끼리 무력 충돌이 잦은 것이 큰 문제이다. 대통령제와 민주주의를 기반으로 중동의 여러 나라 중 기독교 신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많지만, 종교의 다양성과 지도자들의 부정부패로 과거의 영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레바논의 의석은 각 종파의 신도 수에 비례하여 분배되며 기독교계와 이슬람계의 의석수를 각 64석으로 하여 128석의 의석이 있다. 이와 같은 인위적인 종파 배분으로 인해 도저히 책임 정치가 이루어질 수 없는 환경이라, 국가적인 중요 사안에 관해 정치적 결단이나 합의가 이루어지기 어렵고, 결과적으로 국가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
레바논의 미래 - 시리아 난민과의 화합
011년 3월 시리아 내전 발발 이후 레바논으로 피신해 온 시리아 난민이 현재 레바논 인구의 약 4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 레바논은 인구 대비 가장 많은 시리아 난민을 받아들인 국가이다. 이미 150만 명의 시리아 난민이 입국해 살고 있고 그중 88만 명은 유엔난민기구에 난민으로 정식 등록되어 있는 최대 난민 수용국이다. 하지만 150만 명에 달하는 시리아 난민 중 40%는 유엔 난민 기구에 난민으로 등록되어 있지 않아 유엔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으며, 20%는 무허가 임시 천막촌에 거주하고 있다.
레바논에는 두 종류의 난민들이 존재한다. 도시의 빈민촌을 형성하는 도시 난민(영화 가버나움의 배경으로 나옴)과 ‘베카’라는 지역에서 사는 지방 난민들이다. 베카의 여러 지역 끝자락에는 수백 개의 천막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베카에 사는 시리아 난민들이 레바논으로 넘어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난민 텐트 설치를 위한 땅을 렌트하기 위해 빚을 내는 것이다. 그리고 밭일과 같은 단순노동을 하여 얻은 4불로 하루 생계를 이어간다. 한국 선교사들이 천막촌 곁에 건물이나 닭장을 세 얻어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아이들을 모아 영어, 아랍어, 수학, 성경 등을 가르치고 있다. 200여 명의 아이들이 좁은 공간에 모여 공부를 하고 있는 모습에서 레바논과 시리아의 미래를 기대해 본다.
전국이 전기 공급이 잘되지 않아 하루 2시간 정도만 전기가 들어오고 있으며 물도 제대로 공급되지 않아 물차가 물을 배달해 주고 있다. 건물은 크게 잘 지어졌는데 가장 기본적인 생활을 위한 필수 시설들이 제대로 작동되지 못하고 있다. 터널을 지날 때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컴컴한 터널을 지나야 하며 신호등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좁은 차도에 차들이 엉켜 스쳐 갈 때마다 공포심을 떨칠 수 없었다.
컴미션 선교사들이 시리아 난민 선교를 위해 이 땅을 밟은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레바논 선교를 위해 10년 전에 들어온 반준화 & 이미숙 선교사가 현재는 시리아 청소년 사역과 싱글 맘 사역을 하고 있다. 최근 허조에 선교사가 레바논 베카 지역에 자리를 잡아가고 있으며 박주희 선교사가 요르단에서 언어 훈련 1년을 마치고 합류하였다. 요나단 & 그레이스 선교사 가정은 비자 문제를 해결하고 베이루트에서 언어 훈련에 매진하고 있으며, 새롭게 합류한 이주열 & 이지희 선교사는 언어 훈련과 정착을 위한 장기 비자 취득을 준비하고 있다.
10일간의 여행을 마치고 레바논을 떠날 때 마음이 가볍지는 않았다. 극한 상황 속에서 복음을 위해 싸우는 선교사들을 주님의 손에 맡기며 늘 이길 힘을 주시기를 기도한다. 시리아 난민들이 생존을 위해 지금은 몸부림치고 있지만 저들이 주님을 만난 후에 하나님 나라에 대한 사명으로 진정한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 태어나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