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E으로부터 받은 측량할 수 없는 주님의 사랑 / 김지하 선교사 (파라과이 Come Lord 교회 사모)

기독교 집안 아버지와 어머니

저는 온 가족이 주님을 믿고 섬기는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저희 아버지가 교회에 대한 실망을 안고 주님의 길을 떠났습니다. 떠났을 뿐만 아니라 어머니를 매우 힘들게 하셨습니다. 술만 드시면 예수쟁이들은 다 거짓이고 가짜라고 하시며 교회에 가지 말라고 많이 때리고 어머니를 심하게 학대하셨습니다. 어머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벽 예배, 주일 예배, 철야 기도회를 빠지지 않고 참석하셨습니다. 어머니는 견디기 힘든 모든 상황 속에서 절대기도를 놓지 않으셨으며 항상 주님만 찾으셨습니다. 하지만이런 가정의 어려움 때문에 오빠 3명이 상처투성이로 자라게 되었고 성인이 되자마자 집안을 떠났으며 주님의 길도 떠났습니다.

파라과이 이민

저희 부모님은 1976년 파라과이로 이민을 오셨습니다. 파라과이에서의 삶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잘살아 보려고 파라과이에 왔지만, 부모님의 사업은 매번 실패함으로 이사를 자주 하게 되어 경제적으로 매우 어렵고 힘들었습니다. 그 어려움 때문에 아버지는 어머니를 더욱 핍박하셨습니다. 특히 어머니가 교회만 갔다 오시면 아버지는 집안을 뒤집어 놓으셨습니다. 제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그 해에 어머니는 사고로 침대에 눕게 되었고 치매까지 앓게 됐습니다. 감사하게도 그 후로는 아버지가 많이 달라지셨습니다. 드디어 가장의 자리를 찾으시고 어머니를 돌봐 주셨습니다. 그러나 어머니께서는 7년 동안 침대에서 움직이지 못하셨습니다. 병석에서 일어나지도 못하시게 된 7년째부터 저는 어머니를 제 방에 모시고 간호했습니다. 직장을 다니며, 대학교에 다니며, 식사를 챙겨드리고, 목욕을 해드리고 기저귀를 갈아드리며 돌봐 드렸습니다. 어머니가 그렇게 되셨던 초기에는 그 현실을 받아들이기가 너무 힘들었고 슬프고 우울했습니다.

컴미션과의 만남

2009년에 이모의 초청으로 호주를 잠시 갔는데 거기에서 호주 컴미션 본부를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호주 컴미션의 이사장님이신 김측도 장로님께서 “미국 컴미션에 계시는 이순애 사모님께 메일을 한번 보내 보렴”해서 미국 컴미션과의 인연이 시작되었고 2009년 SMS(Summer Mission School) 1기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26살에 처음으로 남미가 아닌 다른 대륙에 가게 된 것이었습니다. 20~30시간을 날아 호주를 거쳐서 미국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주님께서는 지금의 저를 만들기 위해서 모든 것을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SMS에서 한 달 동안 집중 훈련을 받았습니다. 체조와 기도로 새벽을 깨웠습니다. 매일 드려지는 예배와 강사님들의 강의와 저녁 집회가 저의 영적 세계에 눈을 뜨게 하였습니다. 처음 해보는 공동체 집중 훈련이었지만 전혀 힘겹지 않았습니다. 영적으로 충만해지는 기쁨 때문인지 마치 천국에서 생활하는 것 같았습니다. 규칙적인 습관과 생활이 저를 단련시키며 훈련시켰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육신과 영혼이 건강해지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자기중심적인 생각과 생활과 모든 정욕을 내려놓고 영의 것을 추구하는 삶의 의미가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깨달으며 거기에서 얻는 자유와 기쁨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억지로 힘들게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나보다 남을 생각하고 섬기는 진정한 사랑의 가치와 그것을 표현하는 것이 얼마나 값진 것인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초대교회에서 사도들이 살았던 삶이 아닐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본부를 거쳐 가는 컴미션 선교사님들과의 짧은 만남을 통해서도 많은 도전을 받았습니다. 저는 선교사는 자신을 희생하면서 복음을 전한다고 늘 생각했는데 도리어 그들은 희생이 아닌 주님의 충만함과 사랑으로 사역하는 모습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복음이 들어가지 못한 곳에서 그들의 삶이 얼마나 아름다울지를 생각하며 그들이 부러웠습니다.

고향 파라과이에 들려온 소식

한 달 훈련의 시기가 끝날 무렵 2009년 7월 27일, 아침에 제 고향 파라과이에서 전화가 왔었습니다.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다는 연락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몇 개월 전에 어머니께서 다시 일어나실 수 있다는 믿음으로 40일간 두 끼니를 금식하며 기도했었습니다. 나사로가 부활했던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우리 엄마를 다시 일어서게 하실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는 달랐습니다. 파라과이에 있는 가족은 이미 장례를 치렀기 때문에 그냥 오지 말고 계속 미국에 머물다가 훈련 끝나고 오라고 하였습니다. 훈련원에 참석한 모든 강사님들과 형제자매들이 저를 위해 사랑이 가득한 모금을 해주었습니다. 그 돈으로 비행기표를 살 수 있었는데 그때 저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때 저는 이순애 사모님께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라고 조언을 구할 때, 사모님께서는 “하나님 나라에 가신 지하 엄마는 지하가 지금 어떻게 하기를 바라셨을까?”라고 스스로 결정하라고 하실 때 눈물이 터져 나왔습니다. 제 의문에 대한 정답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엄마는 항상 내가 신앙의 길을 믿음으로 담대하게 걷기를 원하셨습니다. 또한 주님을 위한 헌신자로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곳에 남아 있는 것이 엄마를 가장 기쁘게 할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남기로 결정을 했고 그날 저녁 예배 때 모든 것이 다 주님의 계획안에서 크신 뜻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날밤 이재환 선교사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목사님의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기 직전에 “보라 내가 죽는 것이 천국의 부활을 의미한다. 내가 죽는 건 저 천국에서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영원히 살기 위한 것이다”라는 말씀을 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때 저는 큰 감격을 받았습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40일 동안 기도로 준비하신 이유가 이날을 위해서였던 것이구나. 우리 엄마가 다시 부활할 수 있다는 의미가 이 땅이 아니라 저 천국을 의미하는 것이고 주님의 자녀들에게는 이 땅의 죽음은 천국의 부활이란 것을…” 파도 넘치는 눈물로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저는 평생 그 당시의 일을 잊지 않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가 홀로 엄마의 죽음을 원망하지 않도록 저를 그 시기에 컴미션으로 보내주신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일 년 동안의 시간을 컴미션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지냈습니다. 상상도 못했던 미국에서 건강하고 아름다운 공동체 안에서 같이 예배드리고 기도하고 말씀 묵상하고 함께 먹고 웃고 지냈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와 부활의 주님을 매일 나누며 주님의 나라가 오기를 함께 꿈꾸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가야 주님이 오신다”라는 뜻이 무엇인지를 깊이 깨달았습니다. 영적으로 막연했던 모든 것 하나하나가 분명해지면서 나의 삶이 애절하고 뜨겁게 변해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나 자신이 죽고 주님을 위해서 사는 의미와 이 땅의소유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 일 년 넘게 지냈던 시간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습니다.  

파라과이에서의 삶

그리고 저는 파라과이로 돌아와서 결혼하고 남편 옆에서 목회 사역을 했습니다. 지난 10년간 가장 힘들고 절망적인 순간들이 닥칠 때마다, 모든 것을 포기하려고 했던 순간마다 주님께서는 저에게 컴미션에서 보냈던 그 시간들을 기억하게 하셨습니다. 컴미션이라는 곳이 제게 없었더라면 아마도 지금의 저는 사역을 하지 못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시련의 시간들과 어려운 과정을 넘어갈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컴미션을 통해 받은 주님의 은혜였습니다. 

저에게 컴미션은 주님의 복음을 위해 수고와 땀과 눈물이 쌓인 기도의 처소이자 주님의 나라를 사모하는 장소입니다. 그 덕으로 저도 그런 사역자가 되고 싶은 기대와 소망으로 이겨내 왔습니다. 물론 어려움 가운데서 실수도 많이 했고 철없는 행동도 많이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 모든 상황에서 이재환 목사님과 이순애 사모님의 섬김과 선교를 생각하고 기도할 때마다 저는 눈물을 흘리면서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주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주님, 우리 남편과 제가 그런 주님의 종이 되기를 원합니다. 이 세상 것에 욕심을품지 않고 날마다 주님의 복음을 전하며 남을 섬길 수 있는 덕이 되는 주님의 종이 되기를…” 지금까지 기도하면서 살아왔습니다. 컴미션은 하나의 지나간 추억으로만 남겨져 있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항상 그 순간들을 돌아보게 하십니다. “내가너를 어떻게 보살피고 함께 해왔던 것을 잊지 말아라” 주님의그 말씀이 지금까지 제 안에 새겨져 있습니다. 

현재 사역하고 있는 <Come Lord>교회를 개척하기 2년 전, 남편과 저는 교회 이름을 놓고 일 년 동안 기도하였습니다. 주님께서 마태복음 24장 14절 말씀과 컴미션을 통해서 부어주신 은혜와 역사하심에 대한 감격 때문에 교회 이름을 영어로 <Come Lord>라는 이름을 짓자고 결정하였습니다. 지금 당장 미전도 종족을 향해 직접적인 선교는 못 하지만 주님의 복음을 온 파라과이에 전파하며 온 열방을 품고 복음이 아직 들어가지 못한 나라들과 종족들을 기억하며 기도하는 선교적 교회가 되려는 소망으로 교회를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지금까지 저희 부부는 교회를 개척한 순간부터 청년들을 가르치고 섬길 때마다 제가 공동체 생활에서 배웠던 모든 것들을 잊지 않고 가르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번 이재환 목사님, 이순애 사모님, 한현호 장로님 그리고 한경숙 권사님의 방문으로 더욱 실제적인 도전을 받게 되었습니다. 목사님께서는 마태복음 24장 14절과 로마서 11장 25절 말씀으로 선교적 종말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세상은 죄악과 재앙으로 점점 더 망하고 있지만 결코 그것 때문에는 세상 자체가 망할 수 없다는 것과 주님이 오셔야 만이 세상이 망하게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선교해야 한다는 것과 빨리 주님이 오시려면 이방인의 수가 다 차기까지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특별히 우리 교회에 대한 가르침으로 받아들이며 남편과 저는 크게 감사하며 감격하였습니다. 그리고 한현호 장로님께서 신명기 8장 나오는 말씀으로 간증을 해주셨는데 우리도 우리가 이 자리에 있는 것은 결코 우리의 힘과 경험과 잘남이 아니라 오직 주님의 은혜로 하나님께서 전부 다 하셨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으로 받아들이며 더욱 마음에 새기게 되었습니다. 지금의 우리 부부와 우리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는 주님의 다시 오심을 적극적으로 당기는데 앞장서도록 말씀과 기도와 성령과 선교로 무장하는 것임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주셨습니다. 크신 섭리와 사랑과 인도하심에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올려 드립니다. 주님… 감사하고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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