힌두교의 나라 네팔 / 김창근 선교사 (네팔)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이사야 43장 21절

힌두교 선교사로서의 준비 부족

2010년 6월, 네팔로 선교사 파송을 받을 때 힌두교 선교에 관해 거의 알지 못했습니다. 이처럼 저 자신이 힌두교 선교에 대해 충분히 준비하지 못하다 보니 전략을 세울 수 없었습니다. 오직 미전도 종족 선교에 집중하고자 했지만, 네팔 전역이 지배적으로 힌두교권이라 저에게는 모든 것이 새롭고 대처하기 힘들었습니다. 힌두교에 관한 책을 사서 공부도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힌두교에 대해 이해하기가 어려웠습니다. 현장에서 살다 보니 힌두교는 원주민들에게 삶이고 문화이기에 종교와 삶을 분리할 수 없는 모습을 계속 보게 되었습니다. 힌두교 역사는 4천 년이 넘었고, 3억 3천만의 신을 섬기고 있습니다. 그래서 네팔은 신의 나라라고 합니다. 힌두교를 믿는 나라가 인도, 네팔, 그리고 인도네시아 발리섬, 몇 나라가 되지 않지만, 총 힌두교인이 15억 정도로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힌두교는 모든 종교를 수용할 수 있다고 합니다. 네팔은 힌두교가 80%로 주 종교이며 불교가 10%, 이슬람이 5%, 기독교가 3%를 이루고 있습니다. 인도와는 종교가 같고 문화도 비슷해서 같은 영역에 속해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사실 힌두교와 불교는 하나입니다. 석가모니가 네팔에서 태어난 것을 비롯하여 힌두교에서는 석가모니가 힌두교 신 중의 하나로 간주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윤회설에 갇혀 사는 힌두인들

힌두교에는 <시바신>이 주 신인데 <시바신>은 국가 신이고 원주민들의 아버지와 같은 신입니다.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많은 신들에게 제사를 하는 것을 보고 배우다 보니 자연스럽게 다원주의 종교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또한 윤회설을 믿기에 이 땅에서의 운명을 자기 업보로 여겨 순응하며 살아갑니다. 이 땅에서 불행한 삶을 사는 것이 전생에 자기의 업보이기에 자기의 신에게 그것을 항의하거나 따지지 않고 그대로 순응하며 살아갑니다. 또한 다시 윤회를 하기에 지금의 신분보다 더 나아져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는 막연한 꿈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들은 브라만 계급에 오르고자 하는 소망이 있습니다. 브라만은 선한 삶을 살며 많은 선을 쌓았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처럼 브라만은 가르칠 수 있는 힌두교 제사장으로서윤회를 했다고 믿어 존경하고 따릅니다.

카스트 제도와 기독교에 대한 오해

브라만과 불가촉천민은 같이 식사할 수 없고 한 교실에서 공부하는 것도 허용되지 않습니다. 옛날 한국의 양민과 천민 계급보다 더한 것이 카스트 제도입니다. 기독교가 갖고 있는 평등의 개념을 이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지금도 산악 마을에는 브라만이 사는 동네가 따로 있습니다. 외진 시골로 갈수록 카스트 제도는 더 심합니다. 힌두교에서는 기독교를 이방 종교이며 하위 종교로 보고 있는데 그 이유는 교회에 출석하는 구성원의 대부분이 낮은 계급의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윤회를 믿는 힌두교인들의 장례 모습

힌두교는 죽은 시신을 땅에 매장을 하지 않고 화장을 합니다. 이는 히말라야산맥에서 내려오는 물이 신성한 물이기에 시신의 입에 이 물을 넣어야 다시 좋은 윤회를 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힌두교 신자들은 <파슈파티나> 라는 힌두 사원에서 화장을 하기를 소망합니다. 그런데 히말라야산맥 물이 힌두 사원 화장터에 다다를 때는 벌써 깨끗하지 않고 더러운 물이 됩니다. 그리고 장례식을 할 때는 거의 어느 누구도 울지를 않습니다. 왜냐하면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이 울게 되면 윤회에 방해를 줄 수 있다고 믿기에 정말 슬픔에 빠진 가족 몇 명 외에는 울지를 않습니다. 윗편에서는 화장을 하고 바로 아래편에서는 아이들이 수영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이 죽은 후에 다시 윤회를 해서 태어나기에 죽음을 어렵지 않게 받아들이는 것이 이들의 삶입니다. 어려움이 있을 때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말씀을 붙잡고 극복하려고 하지만 힌두교 신자들 중 일부는 이 업보를 끊으려고 자살을 합니다. 한때 저희 집 골목에서 한 사람이 자살을 하더니 그곳에서 연속적으로 자살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어두운 악한 세력이 이들의 약한 틈을 이용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게 한 일입니다. 

2008년 후 기독교 선교의 황금기와 핍박기

2008년, 군주제가 무너지면서 바로 공산당이 통치를 하게 되었습니다. 왕이 권좌에서 내려오면서 세속 국가로 선포되었으며 모든 종교는 평등하다고 인정하여 성탄절도 공휴일로 정했습니다. 이후 10년간 네팔은 선교 황금기였습니다. 자유롭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고 저도 이 시기에 산악을 다니며 마음껏 복음을 전했습니다. 왕이 권좌에 있을 때에는 기독교인이 0.6%이었지만 2008년 이후 복음이 급속히 전파되면서 10년 사이 기독교인이 3%로까지 올라갔습니다. 그러나 2015년, 네팔 대지진으로 나라가 재난을 맞은 혼란한 상황 속에서 정치가들이 기독교의 성장을 두려워하기 시작했습니다. 힌두교 국가의 존립 위험을 맞을 것 같은 위기감을 느꼈는지 헌법 개정 작업을 시작하였습니다. 그것은 기독교를 타겟으로 한 <종교 개종 금지법>이었습니다. 그 내용은 개인이 타인에게 개종을 시도한다면 수감 5년 형이며 외국인은 추방한다는 법이었습니다. 이는 분명히 기독교를 염두에 두고 만들었던 것이었으며2016년 8월에 공포가 되었습니다. 이후 이 법으로 인하여 선교사 7가정이 추방을 당했고 현재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예수님도 힌두 신의 한 사람

이 헌법이 공포되기 전까지 저는 열심히 히말라야산맥 아래산악 지역을 다니며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교회가 세워졌고예배 공동체가 세워졌습니다. 지금까지 7 지역에 교회가 세워짐으로 사역자들을 지속적으로 훈련할 수 있었습니다. 타종교와 마찬가지로 힌두교 세계관과 문화와 기독교 세계관과 문화가 서로 다르기에 전도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삶이 종교이고, 종교가 삶인 이들에게 유일신 하나님과 구원자 예수님을 소개하는 것에 성령의 역사와 지혜가 필요했습니다. 왜냐하면 힌두교는 창조주가 중요하지 않고 현재를 다스리는 신들이 중요하기 때문에 창조주는 제한적인 신으로 생각합니다. 인간이 만든 종교임에도 불구하고 맹종을 요구하고 우상 숭배를 강요합니다. 이들의 미래는 늘 불안하며 구원의 확신을 볼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도 많은 신들의 한 분으로 보기에 바른 복음이 전파되기 어렵습니다. 한국에서 네팔에 단기팀이 와서 힌두인들에게 복음을 소개하면 영접 기도까지 하지만 구원자 예수가 아닌 여러 신들 중의 한 분으로 영접합니다. 교회를 다녀도 집에서는 힌두 신에게 제사를 하는데 모습들이 저에게 충격이었습니다. 영혼 세계의 주인이 바뀌지 않은 것입니다. 

제자 훈련을 통한 진정한 영적 변화

기독교 인구 증가율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주인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이후 제자 훈련에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자 훈련을 받은 사역자들이 개 교회로 돌아가 성도들을 제자 훈련시키도록 하였습니다. 그 이래로 하나님께 헌신하는 사역자들이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한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분명히 알고 복음 전도자로 설 때 또 다른 사역자를 세우게 된다는 것을 산악 교회를 통해서 보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선교사가 현장에서 직접적으로 복음을 전하기는 어렵지만 저희 산악 교회 사역자들이 전도팀을 만들어 교회가 세워지지 않은 지역에 매주 다니며 전도를 하고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고, 예수님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자이심을 믿기에 열정을 다해 지금도 전도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한 언론 매체를 통하여 한국 기독교 선교사들의 적극적인 선교로인해  힌두교 국가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고 방송을 하였습니다. 또다시 간접적인 핍박이 일어나고 있는 상황입니다.

산악 선교의 위험을 선교 사명으로 감당

산악을 다닐 때마다 이 길이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현장에 다닙니다. 산악 도로가 워낙 험악하여 언제든지 사고의 위험을 동반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평생 듣지 못한 원주민들을 만날 때마다 선교사로의 사명을 늘 잊지 않게 됩니다. 오래되신 선교사님들이 “현장에 답이 있기에 현장을 방문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조언합니다.

힌두교는 까도 까도 끝이 없는 양파

누군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힌두교는 양파와 같다. 까도 까도 끝이 없다.” 힌두교를 100% 정리하는 사람을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경험한 자기의 신을 죽을 때까지 추상적으로 믿다가 죽는게 힌두교라고 합니다. 그 끝을 명확하게 자신 있게 말한 사람을 저는 지금까지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죽어서 천국에 간다라는 믿음으로 명확하게 말을 하면 이들은 매우 놀랍게 여깁니다.

복음만이 유일한 이 땅의 희망

현장의 사역자들이 험한 길을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에 바울과 같은 사역자들입니다. 악한 영에게 묶여있는 병든 자들, 귀신 들린 자들… 예수님의 이름으로 병 고침이 일어나며 귀신이 떠나가는 역사를 많이 봅니다. 정말 신들의 싸움에서 우리 하나님만이 만왕의 왕이요, 만유의 주이심을 경험하게 하는 곳이 이곳 힌두교 땅 입니다. 저희의 지혜로는 복음을 전하기 어렵습니다. 오직 성령의 주권과 역사하심만이 있어야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곳입니다. 진리를 찾고는 있지만 허망하고 허무한데 굴복하는 이곳입니다. 그러나 소망이 있습니다. 최근에 네팔 노동자들이 한국에 많이 들어갑니다. 현재 10만 명 정도의 많은 네팔 노동자들이 한국에 있습니다. 돈을 벌러 왔다가 예수님을 영접한 노동자들이 하나님께 헌신하여 다시 고국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들어갑니다. 이들을 만나보면 정말 삶의 주인이 바뀐 것을 보게 됩니다. 정말로 열심히 복음을 전합니다. 점점 선교지의 전방과 후방의 경계선이 사라지고 있는 것 같다고 느낍니다. 저희는 전방에서, 한국 교회는 후방에서 선교의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네팔 산악 지역에 복음 전도자가 절실히 필요

작년에 에베레스트 근처의 산악 교회를 14시간 운전하여 다녀왔습니다. 교회는 세워졌는데 말씀을 전하고 지도할 수 있는 사역자가 없습니다. 하루 종일 차 한 대도 다니지 않는 오지이기에 외부와의 교류도 제한적인 지역입니다. 아직도 선교사들이 다녀야 할 미전도 산악 지역과 특별히 네팔 서부 지역은 접근이 어려워 복음을 듣지 못한 많은 영혼들이 있습니다. 이들을 생각할 때마다 안타깝습니다. 

복음의 온전한 전파를 위한 기도 요청

교회가 세워졌던 지역들을 보면 지역 주민들의 거부와 사역자들이 카스트 제도에서 발생하는 계급 차이로 인해 겪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교회가 세워진 네팔 서부 지역 역시 주민들의 거부와 계급 차이 등이 교회가 세워지는 것에 방해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방해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주님의 때에 주님의 교회가 세워질 것을 믿습니다. 산악의 젊은이들이 점점 도시로 이주하는데 도시 경험을 한 사람들은 다시 자기 고향에 돌아가지 않습니다. 살기 위해 도시로 나온 젊은이들이 복음을 듣고 하나님께 헌신하여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 복음을 전하는 헌신자가 나오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힌두교인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자기의 신에게 굴복하여 찬양하고 있습니다. 속히 그들이 참 주님이신 하나님을 찬송하는 날을 고대합니다. 매일 매일 현장에서 기도하며 하나님이 행하실 그날을 바라보며 사역합니다. 얼마 전 사역 훈련을 받고 헌신한 가정이 산악 지역 중 오지 동네로 이사를 하였습니다. 이미 그 동네에 교회가 세워졌지만 정착한 사역자가 없어 기도 중이었는데 이렇게 한 가정이 결단하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 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을 깨닫고 천국 소망을 가진 자의 모습입니다. 우리 모두 전후방에서 이러한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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