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에서 직접 따며 시원한 생대추를 맛보았습니다
2017년 10월, 처음 농장 훈련원을 방문했던 인터컨퍼런스 때에는 창고 속 빼곡히 들어찬 통들 속에 가득 차 있는 대추들을 보기만 했는데, 이번에는 잘 익은 대추를 직접 따보고 달고 아삭한 생대추도 그 자리에서 따서 바로 맛보는 새로운 경험도 할 수 있어 감사했습니다. 올해 안식년을 맞아 본부를 방문하면서 8월 초 농장에 왔을 때 아직 대추가 다 익지 않아 새가 먹거나 빨갛게 탄 대추들만 따고 본격적인 수확을 도와드리지 못해 안타깝고 죄송스러운 마음이었습니다.
다시 농장을 방문, 일주일간 대추 수확에 동참했습니다
그런데 시애틀 형제 교회 방문 후 하나님의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육로를 통해 캐나다에 돌아가는 길이 막혀 비행편을 알아보다 잠시라도 대추 수확을 돕고 가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어 다시 농장으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2주 후, 다시 방문하니 파란 대추들이 빨갛게 잘 익어 있었고, 비록 일주일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대추 수확을 함께 할 수 있어 참 감사했습니다. 이재환 목사님께서 농사를 지으시면서 성경에서 농부로 비유되기도 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더 알게 되었다고 종종 말씀하셨는데, 그 말씀이 무슨 의미인지도 조금은 알 것 같았습니다.
더위와 가시와 씨름하는 농부의 고통에 참여했습니다
보통 때도 화씨 90-100도, 더울 때는 100도가 넘는 더운 날씨에 대추를 따다 보면 등은 금방 땀에 젖어버립니다. 게다가 뜨거운 태양열을 견디고 자란 대추나무의 가시는 얼마나 억센지, 모자를 쓰고 장갑을 두 겹이나 끼고 완전 무장한 채 대추를 따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머리나 손에 가시가 박히면 ‘억’ 하는 소리가 절로 나게 아픕니다. 잘 익은 대추 열매 하나를 수확하기 위해서는 더위를 참고, 가시에 긁히고 찔리는 아픔을 감내해야 한다는 것을 경험하면서 추수가 거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농부의 땀과 눈물을 통해 얻는 결과물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농장 생활은 성경을 깊이 이해하게 합니다
킹살렘 훈련원 농장은 그냥 농장이 아니라 선교 훈련원의 목적으로 시작되었는데, 그래서인지 대추를 따면서도 묵상할 수 있는 기회들이 많았습니다. 실수로 머리에 큰 대추 가시가 박혀 너무 아파 주저앉았을 때, 가시 면류관을 쓰신 예수님이 생각났습니다. 성경에는 예수님께서 머리에 쓰신 가시 면류관을 만든 가시 나무가 무엇인지 명시되지는 않았지만 많은 성경학자들은 당시 이스라엘에서 많이 나던 대추나무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대추 가시가 하나만 머리에 박혀도 이렇게 아픈데 이 독한 가시가 촘촘히 박힌 면류관을 쓰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님은 얼마나 고통스러우셨을까 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 은혜를 다시금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수확한 대추들 중 새가 먹거나 빨갛게 타거나 상한 대추들을 분류하는 작업을 통해서는 죄와 거룩함에 대해서 묵상을 하게 되었습니다. 새가 많이 먹어 거의 씨만 남은 것도, 부리로 콕 찍고 간 듯 아주 작은 흠집만 있는 것도, 둘 다 상품 가치가 없는 것으로 분류되는 것을 보면서 죄라는 것은 경중에 상관없이 우리를 거룩하신 하나님에게서 분리시키는 것이라는 사실이 더 실제적으로 깨달아졌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양과 염소를 분리하는 예화와 알곡과 가라지에 대한 비유가 생각나면서 시험에 들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라 말씀하신 예수님의 당부가 생각났습니다.
죄가 너무나 만연해서 죄를 죄로 여기지 않는 세상 속에서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세상의 기준이 아닌 하나님의 기준에 따라 살며 순종할 수 있도록, 그리고 시험과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깨어 기도해야 하는 것임을 다시금 생각했습니다.
주님이 안식년을 의미있게 보내게 하셨습니다
농장에서의 열흘 남짓한 시간은 육체적으로는 덥고 힘들었지만, 영적으로는 많은 유익과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던 너무나 귀중하고 값진 시간이었습니다. 영적인 은혜와 더불어 해질 무렵 골프카를 타고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붉게 물드는 아름다운 석양을 감상할 수 있었던 시간은 안식년을 즐기라고 주님이 주시는 보너스같았습니다. 겁 많고 운전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는 제가 골프카와 4륜 오토바이를 몰고 사막을 질주할 수 있는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도전과 용기를 주신 이재환 목사님과 이순애 사모님께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