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 난민을 섬기러 J국에서 L국으로 / 허조에 선교사 (L국)

기쁨을 안고 다시 돌아온 L국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다던 L국 땅에 기쁨을 한가득 안고 왔다. 하나님은 인격적으로 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이시다. 2년 전 L국 땅을 밟았을 때와 지금의 내 마음은 참 많이 달라졌다. 아니 다시 태어났다는 말이 맞을 것 같다. 이 새로운 생명은 앞으로의 시간과 여정들 속에서 더 선명히 나타날 것이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고후5:17)

단단한 대추나무처럼

캄보디아에서 나와 미국 본부에서 쉼과 회복의 시간을 보낼 때, 이재환 선교사님은 대추나무처럼 단단해지라는 말씀을 많이 해 주셨는데 단단한 새 대추나무가 되었는지도 두고 볼 일이다. J국에서 2년의 언어 훈련 기간을 마치고 이곳 L국에 온 지 벌써 한 달이 되었다. 주님과의 관계 속에서의 구원의 여정을 정리하며 확신하고, 새로운 시즌을 맞이하고 있다.

죽어야만 다시 살 수 있으며,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며 죽고자 하면 사는 내가 믿는 신앙은 참으로 잔인하다. 반면 이것은 참으로 놀라운 축복이며 은혜이다. 이전 선교지에서 이 일을 이루시고야 말았다. 선교사라는 직분으로 회칠은 되었지만 내 영은 썩어 악취가 나는 시체임을 보았다. 빛 되신 주 앞에 나의 마음은 새까맣고 역겨운 하수구와 같았다. 내 안에 더럽고 추악한 것들을 볼 때마다 죽고 다시 사는 방법밖에 없었다. 이것 말고는 해결책이 없었다. 거룩한 주님은 이런 나와 영원히 너무도 사랑하고 함께 하길 원하신다. 이를 위해 다시 살릴 수 있으신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단에 올려 죽여야만 했던 것처럼 나를 반드시 한 번은 사망에 두셔야 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죄 덩어리로 태어난 나를 반드시 심판하셔야 했다. 살아있으며 활력이 있고 좌우에 날 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한 하나님의 말씀은 만물보다 심히 부패한 나의 마음을 찔러 쪼개었다. 성령은 소멸하는 불로 임하셔서 나를 온전히 불살라 태우셔야만 했다.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과 함께 양쪽에 달린 강도들이 되어 있었다.

창녀와도 같은 나에게 생명을

처음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삶이 180도 바뀌었을 때는 예수님만 십자가에 달려 있으셨다. 이번에는 그의 옆에서 나도 못박혀 달려 있었다. 그곳에서 오른편 강도가 될지 왼편 강도가 될지가 결정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동안 예수 그리스도를 경험한 은혜와 사랑으로 가르쳐 주신 유일한 구원의 이름, 예수를 부인할 수 없었다. 깊이 박힌 못으로 고통이 시작될쯤 그의 이름을 부르며 고개를 돌려 예수님을 보았다.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은 나를 향한 긍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그 눈이 마주치는 순간 나를 대신해 나의 모든 고통과 수치를 다 감당하셨다.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나는 죽었다. 그토록 바라고 원했던 갈라디아서 2장 20절 말씀이 실재가 되었다. 그리스도의 피로 하나님과 온전하고 영원한 새언약을 맺게 된 것이다. 더 이상 율법에 매어 종으로서 주를 사랑하고 말씀을 지켜 살아내는 것이 아니라 죄가 나를 주장하지 못하여 은혜 아래에서 마음으로 순종하는 의의 종이 되었다. 십자가에 달리기에 마땅한 나의 영의 죄목은 창녀이다. 이 징계는 세상의 징계와 다르다. 하나님의 징계는 하나님의 친아들이 되는 생명과도 같다. 이 회개는 죄사함을 얻는 회개가 아니라 생명을 얻는 회개였다. 창녀였던 나의 옛사람이 죽어 하나님의 생명(ZOE)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었다. 나를 부인하고 예수님을 따르기 위한 확실한 십자가를 얻어 기쁘고 감사하다. 이 얼마나 강력하고 잔인한 사랑인가.이렇게 하나님의 질투는 거룩하고 순결했다.

너는 나를 도장 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 같이 팔에 두라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고 질투는 스올 같이 잔인하며
불길 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
많은 물도 이 사랑을 끄지 못하겠고
홍수라도 삼키지 못하나니
사람이 그의 온 가산을 다 주고 사랑과 바꾸려 할지라도
오히려 멸시를 받으리라
(아가서 8:6-7)

이 엄청나고 위대한 사랑으로 말미암아 나는 그리스도의 피로 씻어 하얀 드레스를 입은 신부요, 그리스도가 머리 되시고 그의 몸 된 교회가 되었다. 이렇게 광야같던 이전 선교지를 지나 요단강을 건너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되었다. 실제로 L국은 성서지리적으로 가나안 땅이다. 특별히 지금 정착하게 된 이곳, ‘ㅂ’ 지역은 젖과 꿀이 흘러 삼모작으로 밀 농사를 지으며 농작물이 풍부하며 정탐꾼 둘이 막대기에 꿰어 멘 정도의 큰 포도송이를 수확한 에스골 골짜기이다.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 전 필요한 필수 항목이 있었다. 할례와 권리 포기였다. 나의 J국에서의 시간도 단순한 언어 훈련 기간이 아니었다. 할례를 행하고 낫기를 기다리며 머무는 처소요, 하나님께서 애굽의 수치를 나에게서 떠나가게 하신 길갈과도 같았다.

새 영으로 채워진 마음의 할례

아랍어 양육자들이 모두 무슬림이며, 두 달에 한 번씩 양육자가 바뀌는 체계로 이루어지는 곳에서 언어를 배웠다. 그 가운데 새로운 많은 만남들이 있었다. 이를 통해 굳은 마음을 제거하시고 살과 같이 부드러운 마음을 주시는 마음의 할례를 베풀어 주셨다. 이전에 사랑하지 못하는 마음을 볼 때면 괴로웠지만 새 영으로 인하여 사랑할 수 있는 소망이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솟아났다. 정죄가 사라진 자유함은 나를 소망으로 이끌었다.

사랑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거룩한 성품이다. 시체처럼 죽어있던 나의 영으로는 불가능하다. 그저 육신으로 흉내를 낼 뿐이었다. 그래서 주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 역시 철저히 나를 우상화 한 불순한 동기들로 비롯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길갈에서 베푸신 은혜는 너무도 크고 놀라웠다. 모든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인 사랑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게 하실 것이라는 소망이 샘솟는다. 이로써 율법을 이루며 사는 삶이 되게 하실 언약이 내게 더욱 가까워졌다.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벧후 1:4)

J국에서 베푸신 큰 은혜 중 한 가지는 예수님의 피로 죽은 듯 멈췄던 나의 심장이 다시 박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첫 번째 머문 집에서 아가서 말씀 한 절 한 절이 새로운 생명의 양식이 되었고, 이 말씀은 주님께서 나에게 고백해 주시는 최고의 청혼 노래였다. 그날에 거룩하고 순결한 신부로 신랑 되신 우리 주님을 맞이할 기쁨의 믿음이 생겼다.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것처럼 이전의 나의 생명으로는 그 땅을 정복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제 내 안에 사시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가나안 땅을 차지할 것이다.

여호수아의 시대가 되리라는 감동에 여호수아 말씀을 펼쳐보니 “이 L국에서 부터”라고 기록되어 있었다. 아가서에 L국 지명이 많이 나와 한번 놀랐는데, 이 말씀에 두 번째 놀랐다. 새로운 시작에 대한 두려운 마음이 사라졌다.

신을 벗고 있는 L국에서의 새 출발

J국에서의 언어 기간을 마치고 L국으로 돌아와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내 신을 벗고 있다. 사역을 시작하기 전 나의 모든 인간적인 계획들과 방법들 모두 무너뜨려 주시길 바란다. 미련해 보이고 불가능해 보이는 계획과 방법으로 이스라엘을 위해 친히 싸우시고 승리하시는 주님만 드러나시기를 바란다.

시리아 난민을 위한 여학교의 필요성

지난해 L국 방문 이후 보고 들으며 갖게 된 마음이다. 나를 보내준 파송 교회의 마음이기도 하다. 시리아 내전 발발 당시 초등학교 입학할 나이였던 아이들은 피난 생활하며 교육을 받지 못했다. L국에 온 난민들을 위해 유엔이나 NGO, 선교사들이 제공하고 있는 교육은 초등학교가 대부분이고 청소년들을 위한 교육은 전무하다. 초등교육이 활성화되었을 시기에는 앞서 말한 연령대의 아이들은 이미 성장해 어려운 생계를 책임질 나이가 된다.

부모들은 이슬람 전통을 따라 신부 지참금을 받고 15살 된 어린 딸을 시집보내거나 밭에 나가 일을 하게 한다. 이들에게는 형편 때문에 어쩔 수 없고 전통을 지키느라 자연스러운 일이 될 수 있으나, 이 영혼들을 지으신 하나님 아버지에게는 가슴 아프며 눈물이 되는 일이다. 더욱더 안타까운 것은 일부다처제인 이슬람 전통과 아내의 동의 없이도 남편의 의사대로 이혼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청소년들은 어린 나이에 출산과 이혼을 감당해야만 한다.

학력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교육 환경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정보들을 찾아보니 유엔과 규모가 큰NGO들이 L국 교육부에 시리아 난민들의 학력 인정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해 온 것을 발견했다. 일부 몇몇 공립초등학교에서는 오전에 L국 학생들의 수업이 이루어지고 오후에는 시리아 난민 학생들의 교육이 제공되었다. 교사들의 부재와 낮은 출석률로 인해 이 마저도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시리아에는 검정고시 제도가 있다고 하니 학생들이 이를 통해 학력이 인정되고 나아가 사회의 일원으로 건강하게 성장해 가길 바라는 마음이다. 이에 따라 시리아 교육 커리큘럼을 만들 것인지도 고민해야 한다. L국 정부가 시리아 난민의 교육에 대한 허용 범위를 넓혀 준다면 문제는 효과적으로 해결될 것이다.

자립할 수 있도록 기술 교육을 제공하는 센터들은 있지만, 시리아 난민 여학교는 없다. 아이들이 일을 하거나 결혼을 하기 때문에 학생들을 모집하기가 어려워 청소년 사역이 어렵다고 한다. 교회는 신부 지참금을 부모에게 주고서라도 아이들이 교육을 받고 복음 안에서 자라도록 지원하고 지지할 준비가 되어 있다. 교육을 통해 복음으로 정체성을 확립하고 주님 안에서 꿈을 꾸며,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믿음으로 세상을 살아가길 축복한다. 그리고 가난의 사슬과 얽매여 있는 이슬람 전통과 종교로부터 자유함을 얻길 기도한다. 아이들이 영과 진리로 다윗처럼 기뻐 뛰고 춤추며 우리 주님을 경배하는 그 날을 기대하고 또 소망한다.

아동 보호 센터의 필요성

부모의 이혼과 더불어 보호자의 재혼 등의 이유로 친척 집에 맡겨져 지내는 아이들이 많다. 자신들의 평판을 위해 아이들을 맡고는 있지만 형편이 어렵기 때문에 그들을 돌볼 여유가 없다. 우리나라 1950, 60년대 시대 상황과 비슷하다. 부모와의 분리와 방치가 이들에게 얼마나 슬픔과 두려움이 되는지 감히 상상도 없다. 지난해 방문했을 아이의 눈빛에 마음들이 가득함을 보았다. 눈빛이 기쁨과 소망의 눈빛으로 변화되길 바라는 마음은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리라 믿는다.

무슬림 사회도 세계화를 통해 가치관이나 사상이 많이 변화되었지만, 이곳 시리아인들은 아직 시대를 고스란히 살아가고 있다. 자녀가 많기에 딸들의 존재 가치는 매우 낮다. 필요 없으니 주고 사가라고 하거나 원하지 않으니 데려다 키우라는 말을 아이 앞에서 서슴없이 한다. 우리는 우리를 하나님께서 어미의 태중에서 얼마나 존귀하고 섬세하게 지으시고 태어나게 하셨는지 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창조된 우리의 존재가 얼마나 신묘막측한 알고 있다. 놀라운 진리가 전해져 그들의 존재 이유가 되고 살아갈 힘이 되기를 소망한다.

비전과 사역이라는 주제에 대해 말할 때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이 없지 않다. 행여 사랑하지 못하고 아픔을 주는 자신을 보게 될까.. 하나님 마음과 뜻이라고 떠들어 댔지만 그릇된 동기에서 비롯된 욕심인 것은 아닌지… 본질보다 모양이 우선이 되지는 않을지.. 그래서 더욱 기도를 요청하고 싶다.

L국에 오기 이들에게 보내시며 아버지께서 말씀으로 감동을 주신 것은 역대하 29 말씀이다

그런데 제사장이 부족하여
그 모든 번제 짐승들의 가죽을 능히 벗기지 못하는 고로
그의 형제 레위 사람들이 성결하게 하기까지 기다렸으니
이는 레위 사람들의 성결하게 함이
제사장들보다 성심이 있었음이라.
번제와 화목제의 기름과 각 번제에 속한 전제들이 많더라
이와 같이 여호와의 전에서 섬기는일이 순서대로 갖추어 지니라.
이 일이갑자기 되었으나
하나님께서 백성을 위하여 예비하셨으므로
히스기야가 백성과 더불어 기뻐하였더라
(대하 29:34-36)

J국에서 L국으로 오기 전 다시 한 번 확신을 갖기 위해 믿음을 요청했다.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을 보내 주소서하라 하시니라
(마 9:34 -38)

시리아 영혼들을 불쌍히 여기시는 주님의 마음이 학교를 통해 나타나 선한 목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온전히 전해지고 그들의 목자가 되어주시리라 믿는다. 그리고 우리의 섬김과 기도가 아이들을 예수의 생명으로 낳는 자궁이자 교회가 될 것이다.

L국의 비참한 상황

현재 L국의 정치, 경제 상황은 회생이 불가능할 정도로 매우 심각하다. 올해 초 모라토리엄을 선언했고 국민의 절반 이상이 빈곤층이 되었다. 그리고GDP 대비 부채 비율은 세계에서 3번째로 높은 수준이다. 정부는 부정부패, 시아파와 수니파의 종파 간 갈등과 권력 다툼을 하느라 민생을 돌볼 여유는 없어 보인다. 현지 화폐 가치 폭락으로 연료를 구하지 못해 발전소 운영이 중단되어 곳곳에 하루에 5시간 이상 전력공급을 중단하기도 한다. 최근 약을 수입하지 못해 수도의 약국은 80%가 문을 닫고 약이 없어 국민들은 더욱 불안에 빠지고 있다. 기름값은35% 이상 인상되어 주유소마다 주차장처럼 주유하려는 차들이 줄 지어 있다. 대부분의 주유소가 주유량을 정해놓아 길게는 7시간 이상 기다려야 눈금 한 칸을 겨우 채울 수 있다. 주유하면 다행이지만 오랜 시간 기다렸다가 눈 앞에서 원유 소진으로 주유소가 문을 닫는 경우 또한 허다하다.

시리아 난민들에 대한 L국의 반감 많은 L국인이 시리아인들에 대해 썩 좋지 않은 생각들을 가지고 있다. 그들이 국가 경제 위기의 주범이라고 생각하며, 지금 L국인들이 더 가난한데 왜 시리아인들만 도와주느냐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그들이 유엔에서 받는 난민 지원금이 이들의 월급보다 많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여전히 내전 중인 시리아의 상황을 보자면, 지난 5월 대통령 선거가 치러졌다. 선거는 독재적인 아사드 정권의 지배 지역에서만 실시되었고, 반체제파 지역에서는 행해지지 않았다. 불 보듯 뻔한 결과로 현직 바샤르 아사드 대통령이 95.1%의 득표율로 네 번째 임기를 이어가게 되었다. 10년간 계속되고 있는 내전과 Covid-19로 인해 시리아 국민 5명 중 3명이 심각한 기근을 겪고 있다.  

시리아 난민들의 불안과 서러운 삶

타향살이는 부유해도 서러운 삶이다. 이곳에서 난민 신분으로 살아가기란 절대 녹록하지 않다. 그렇기에 시리아의 상황이 나아진 것 하나 없고 아사드의 독재 정권이 계속되는 상황이지만 위험을 무릎 쓰고 내 나라, 내 땅, 내 집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상반된 생각들은 누구에게도 유익을 주지 못하고 갈등의 벽을 계속 두텁게 쌓아가고 있다. 수니파인 총리가 얼마 전 사임을 했고, L국의 경제가 붕괴된 상황에서 시아파의 세력은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기독교는 더욱 쇠퇴해져 가고 핍박은 가중될 것이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시리아 무슬림 영혼들을 추수할 때요, 구원의 때가 되었다고 말씀하신다. L국에 남은 자들이 일어나 나그네 된 시리아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아름다운 발이 되고 예수의 피를 나눈 형제로 두려움을 내어 쫓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게 되길 기대하며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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