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세대가 이루어 갈 선교 완성 / 조슈아 국제 대표

새해, 새로운 기대와 소망

새해를 맞았다. 달력이 바뀌고 다이어리를 바꾸며 새로운 기대와 소망이 가득하다. 지난 2년 동안은 ‘코로나’와 함께했다. 새해를 맞으며 갖는 가장 큰 관심과 우려는 여전히 ‘코로나’이다. 세상은 기대보다는 걱정이, 소망보다는 절망이 지배하고 있지만, 우리는 상황과 상관없이 늘 소망을 가지고 있다. 코로나가 끝나면 끝나는 대로, 안 끝나면 안 끝나는 대로, 우리 주님의 ‘대관식’은 점점 가까워지고 있으니, 우리의 소망인 선교의 완성도 한 걸음 가까워진 셈이다. 어둠은 더 짙어만 가지만, 빛을 향한 갈망 또한 짙어져 가고, 먼 곳의 작은 불씨 하나도 더욱 선명하게 비추이게 될 것이다.

불확실하고 알 수 없는 미래를 마주하며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모르게 되었다. 세대에서 세대로 수직적으로 전승되고 다듬어지던 지혜와 지식들은 점점 그 가치를 잃어가고, 수평적으로 전파되는 검증할 수 없는 소식들과 정보들이 넘쳐난다. 부모님에게서 배웠던 세상과 지금 마주하는 세상은 확연히 다르다. 대략 30년을 주기로 ‘세대’라고 묶어 우리의 자녀들을 ‘다음 세대’라고 불렀지만, 가치관의 빠른 변화와 차별성 덕분에, 세대 안의 동질감도 10년을 장담할 수 없기에 이제 ‘다음 세대들’이라고 불러야 할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어떤 세계를 마주하며, 어떤 사람들로 준비되어, 어떤 세대들을 키워나가야 할까?

예측이 불가능한 앞날을 대비하며 알 수 없는 미래를 예측하기보다는 어떤 상황에도 적응하며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창의적인 능력과 민첩성, 다양한 세대와 가치관을 포용하고 통합하는 능력이 더욱 필요하게 될 것이다. 하나의 거대한 조직보다는 작고 가벼운 조직들이 주체적으로 연결되는 것이 필요하다. 거대한 몸짓으로는 빠른 변화에 대응할 수 없다. 거대한 한 몸보다는 작은 다수의 몸들이 유리하다. 자율성이 보장되는 다수의 주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통일된 하나의 비전이다. 모든 세대가 M2414로 뭉치면 이제 이전세대와 다음 세대의 구별 없이, 우리 모두는 하나의 ‘마지막 세대’가 된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vision)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행 2:17)

말세에는 모든 세대가 일어나 자기의 역할을 하게 된다. 예언은 앞으로 이뤄질 일에 대해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것이다. 어린이들은 상황에 지지 않는다. 울며불며 떼를 쓰고 고집을 부려서 결국은 자기가 말하는 것이 이뤄지는 것을 보고야 만다. 우리의 자녀들은 스스로 선포하는 말씀에 의문을 품지 않는다. 젊은이들은 다르다. 이들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 세상이 결코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비전이 필요하다. 막연한 낙관보다는 명확한 한 장의 그림을 보고 움직인다. 퍼즐은 완성된 그림을 보게 될 때 제 자리를 찾아간다. 목표가 없으면 배회하며 어슬렁거리지만, 비전을 보고 나면 달릴 수밖에 없다. 노인들은 꿈을 꾼다. 노인들의 꿈에는 살아온 과거가 중첩되어 있다. 아이들에게는 길고도 긴 10년 세월이 노인들에게는 화살처럼 빠르게 지나가는 찰나의 순간이다. 많은 어려움을 이겼다. 젊은이들은 두려워하지만, 노인들은 그 두려움의 실체가 헛된 것임을 안다. 기성세대는 이제 아이들과 젊은이들이 이룰 새로운 시대를 꿈꾼다. 노인들을 위한 나라들은 많다. 한 명의 아이가 제구실을 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어른들이 동원되는가? 역할이 끝난 것이 아니라 다른 역할이 주어진 것이다. 본인들의 시대는 끝나고 무대에서 내려오지만, 이제 우리의 공연은 새로운 주역들로 인해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될 것이다.

살아있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아직 남은 각자의 부르심이 있다. 준비하고 있든, 주도하고 있든, 물러나고 있든 우리의 부르심은 오직 하나이다. 성경의 모든 말씀이 성취되는 것은 선교가 완성되는 것이다. 현장의 선교사만 이 일에 부르심을 받은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선교자”로 부르심을 받았다. 장기 선교사가 처해있는 제한된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보안이 중요하지 않은 단기 선교사들과 선교 여행자들이 해결사가 될 수 있다. 방문하고 순회하며 선교지에 보탬이 될 수 있다. 저출산, 취업난 등 정해진(?) 미래를 눈치챈 청년들은 해외 취업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될 것이고, 아예 선교지의 대학으로 진학하는 한국의 청소년들이 많아질 것이다. 장기 선교사에 집중되어 있던 우리의 선교관이 이제 ‘마지막 세대’ 모두의 연맹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선교의 완성을 보려면 모든 사람이 선교지에 산다는 것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후방이 전방을 위한 보급기지로 머물러서는 안된다. 훈련소가 되고 병원도 되어야 하겠지만 무엇보다 ‘사령부’의 역할을 회복해야한다. 선교사를 위해, 현장의 사역을 위해 물론기도해야 하겠지만, 전세계를 품고 나라들을 무너뜨리고 세우는 일들을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선교는 가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보내는 것에서 시작한다.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롬 10:15).

현장 선교사들은 선교사를 만드는 일에 집중해야한다. 호랑이에게서 토끼가 태어날 수 없다. 선교사는 선교사를 낳는다. 모든 세대가 일어나는 것과 함께 모든 민족이 선교로 일어나야 선교는 완성된다. 현지의 제자들을 선교사로 키워야한다. 우리의 땅끝에서 선교하는 교회를 개척해서 그들의 땅끝으로 파송해야한다. 우리는 선교의 대상이었지만 선교의 주체가 된 경험이 있다. 우리의 과거가 그들의 미래가 되게 하자. 우리의 꿈은 그들의 성취이다. 한국인에 국한되지 않는 선교사들의 탄생과 현지의 파송교회들을 꿈꾼다. 우리가 꿈꾸면 그들이 비전을 보고 달리게 될 것이다. 말씀은 마침내 성취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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