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시록은 심판의 책이 아니다.
쉬운 책이다. 선교의 책이다. 소망의 책이다.
계시록에는 탕자를 기다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풍성한 사랑이 담겨 있다.
요한 계시록은 선교적 묵시록이다?
잘 들어 보지 못한 표현이다. 성경의 첫 번째 책인 창세기가 선교적인 말씀인 것처럼 성경의 마지막 책인 계시록도 선교적인 말씀이다. 선교의 목적은 죄인인 사람을 구원하여 예배자로 만드는데 있다. 영원한 예배가 드려지는 하나님의 나라의 도래를 이 땅에 이뤄가게 하는 사역이 바로 선교다. 우리는 시간적으로 마지막 때에 살고 있다. 따라서 이 시대를 바라보는 우리는 이전에 있었고, 현재 진행 중이며, 미래에 일어날 계시록의 내용을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할 때가 되었다.
사도 요한은 “주여! 왜 저만 남겨 두셨나요?”라는 질문을 했을 것으로 상상할 수 있다. 요한의 질문에 대한 내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첫째는 예수님의 어머니인 마리아의 노후를 책임지셨기 때문일 것이다. 둘째는 마지막으로 해야 할 하나님의 중요한 메시지의 결론을 내리고자 했기 때문일 것이다. 셋째는 마지막 남은 주님의 제자로서 선교 완성을 위한 사랑의 복음을 증거해야 할 책임 때문이었을 것이다.
요한 계시록은 모든 사람에게 큰 부담이 되어 왔던 책이다
계시록은 모든 시간 속에서 마침을 가져오는 창세기의 결론이기도 한 책이다. 그간 우리는 모든 성경이 선교의 책이라는 것을 여러 차례 성찰해 왔다. 누가복음 24장 44절에서 48절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을 읽으며 그 선교적 책임이 우리에게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런 의미에서 계시록을 이해하게 되면 그렇게 어렵고 힘든 책이 아닌 것을 발견하게 된다. 생각보다 단순하여 쉽게 읽을 수 있다.
마태복음 24장 14절은 종말을 향한 최종적인 선교 메시지이다
요한 계시록에 나오는 7년 대환난이 없이는 마태복음 24장 14절 이후에 일어날 마지막 종결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선교의 완성이 ‘선교적 종말’을 가져오는 것이지만 이 24장 14절 가운데 요한계시록의 대 선교의 추수가 포함되어야 한다. 계시록이 선교적 계시록이라는 말은 바로 계시록 22장 17절의 말씀에 근거를 두고 있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 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계시록에서 소개되는 환난은 바로 7년 대 영적 결말의 추수기에 일어난다. 이때가 바로 최후의 기회요, 은혜의 기간이다. 이처럼 하나님은 환난의 시기를 통해 구원의 비밀을 선포하시어 마침내 모든 이가 회개하도록 자비의 은혜를 끝까지 부어 주시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모세는 하늘나라에 있는 성막의 본을 떠서 땅에 성막을 만들었다. 그 안에는 지성소가 있는데, 이곳은 누구에게도 공개되지 않는 가장 거룩하고 거룩한 곳이었다. 이 지성소에는 대제사장만이 1년에 한 번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계시록에서 하나님은 하늘의 성전 안 지성소에 있는 언약궤를 열어 하나님 나라의 마지막 비밀 장소를 보여주셨다. 그 의미는 구원받을 자를 초청하고 있다는 것이다. 7년 대환난은 피할 수 없는 고통만 있는 ‘환난’이 아니다. ‘7년 대 선교 추수 기간’이다. 바로 선교적이라는 것이다. 진노의 환난이지만 동시에 자비와 은혜의 기회인 것이다. 매 맞지 않으면 회개하지 않는 인간의 악함을 아시고 환난을 통해 복음을 제시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의 진노임을 보게 되는 것이다. 단순히 심판의 장면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된다.
계시록은 무서운 책이 아니다
선교 완성을 향한 마지막 추수 기간에 일어날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 기간에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게 될 것이다. 물론 상급이 매우 적은 ‘겨우 구원’이기는 하지만, 이 기간에 이방인의 충만한 숫자와 유대인의 남은 자(롬 11:25)의 구원이 이루어질 것이다. 아버지 하나님이 최대의 자비하심으로 최고로 험악한 상황에서 최대의 큰 소리로 죽은 자들을 부르실 것이다.
계시록 7장 9절에서는 선교의 최고의 열매인 ‘영원히 거룩한 천상의 예배’의 장면을 보여준다.
“각 나라와 족속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있도다.”
이것이 바로 미래에 완성될 하나님의 나라의 모습이다. 이 예배를 위해 선교가 필요한 것이다. 이 예배에는 유대인의 구원도 포함된다. 144,000명의 12지파도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완벽한 선교 완성이다. 이 예배를 위해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으신 것이다. 영광과 존귀와 감사와 찬송과 지혜와 부와 능력이 영원토록 아버지께만 있는 것이다.
환난의 반복과 구원의 추수기에 성도들은 기어코 ‘이기는 자’ 가 되어야 한다. 회개할 자는 회개하고 주님을 모르는 자는 구원의 기회를 얻어야 한다. 염소가 양이 되고, 쭉정이가 알곡이 되며 기름을 준비하지 못했던 비운의 다섯 처녀는 기름을 잘 준비하여 신랑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해야 한다. 이처럼 계시록은 교회에게 주는 마지막 메시지인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의 오른쪽에 앉으신 주님은 일곱 금 촛대 사이에 계시는 분으로 어떤 언어로도 표현할 수 없는 분이다. 계시록 1장 7절에 “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주님은 영광중에 구름 타고 오실 것이다. 모든 사람이 보게 될 것이며, 기쁨과 슬픔이 교차되는 순간이 올 것이다. 주의 오심은 우주적이다. 모든 열방이 알게 되고 기뻐할 자들에게는 최대의 기쁨이 되며 거역한 자들에게는 최대의 슬픈 사건이 될 것이다.
미전도 부족의 남은 사역을 위해 총력을 기울인 우리는
이제 곧 마태복음 24장 14절이 이루어지는 날을 눈 앞에 바라보면서
가장 위대한 21세기의 미래 선교의 완성인
7년 대 추수기의 환난기를 믿음으로 바라고 기다리자.
7년 대환난기의 추수의 시작은 계시록 6장에서 시작된다
5장에서는 누가 아버지로부터 두루마리를 받아 그 인을 뗄 것인가의 자격을 말하고 있다. “힘있는 천사가 큰 음성으로 외치기를 누가 그 두루마리를 펴며 그 인을 떼기에 합당(자사 장로들이 그 어린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대접을 가졌으니 이는 성도들의 기도들이라.” 주님에게 두루마리를 주고 인을 뗄 수 있는 합당한 자격은 3가지를 충만하게 했을 때에 가능했다.
1. 거문고의 예배
거문고는 예배를 위한 악기로, 영어로는 하프이고 우리말로는 ‘수금’이라고 번역이 되었다. 선교의 목적이 예배에 있는 것이다. 다윗은 예배를 위해 완벽하게 헌신한 찬양 사역자이다. 다윗의 무너진 장막이 회복된다는 예언이 곧 사도행전 15장의 ‘열방 선교’의 모형임을 야고보 사도를 통해 알게 된다. 선교의 궁극적인 목적은 예배자를 만들기 위한 것이다. 존 파이퍼가 “예배가 없기 때문에 선교가 필요하다.”고 말한 것이 이러한 맥락인 것이다. 우리가 살아 있는 목적은 예배자를 만들고 예배자가 되기 위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에서도 우리의 진정한 존재의 목적은 하나님을 예배드림에 있는 것이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계시록 7장 9절은 진정한 예배의 모습을 보여준다. 144,000의 구원받은 유대인과 수도 셀 수 없는 이방인 그리스도인, 그리고 천사들과 24 장로와 4 생물이 총 출연하는 하늘의 예배이다. 완벽한 선교 완성이요, 구원이 완성된 미래 예배이다. 예배가 살아야 한다. 선교 현장의 예배는 너무도 아름다운 하나님의 사역이다. 다윗의 선교적 예배의 꿈은 시편 67편에 나타나 있다. 우리는 이런 이유로 선교하고 일하며 살아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사
복을 주시고 그의 얼굴 빛을 우리에게 비추사
주의 도를 땅 위에,
주의 구원을 모든 나라에게 알리소서
하나님이여 민족들이 주를 찬송하게 하시며
모든 민족들이 주를 찬송하게 하소서
온 백성은 기쁘고 즐겁게 노래할지니
주는 민족들을 공평히 심판하시며
땅 위의 나라들을 다스리실 것임이니이다
하나님이여 민족들이 주를 찬송하게 하시며
모든 민족으로 주를 찬송하게 하소서
땅이 그의 소산을 내어 주었으니
하나님 곧 우리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리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리니
땅의 모든 끝이 하나님을 경외하리로다"
2. 금대접의 기도
성도의 기도는 향이 되어 이 금향로에 가득 차게 된다. 예배도 쌓이고 기도도 쌓인다. 우리가 드리는 충분한 기도가 바로 예수님을 인을 땔 수 있는 자격자로 만드는 것이다. 기도는 결코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이 대접은 순금 대접인데, 가장 아름답고 순수하고 거룩한 최고의 그릇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름다운 기도를 이 최고의 아름다운 그릇에 담아 두신다는 것이다.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의 금 그릇에 담겨 하나님의 전에 올라가는 것을 상상해 보자. 그렇다! 하나님의 나라의 도래에 꿈을 꾸는 무릎 선교사들의 기도와 골방에서 열방을 품는 기도가 하나님의 나라의 도래를 이루는 절대적 동기가 되는 것이다.
8장 4절과 5절에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 천사가 향로를 가지고 제단의 불을 담아다가 땅에 쏟으매 우레와 번개와 지진이 나더라.” 이 기도가 바로 심판의 때에 큰 역사를 일으키는 것이다. 이런 기도가 없이는 하나님의 나라의 도래를 꿈꿀 수 없다. 아버지의 손으로부터 두루마리를 받아 인을 뗄 수 있는 기회가 일어날 수 없다.
3. 구속 받은 자들을 제물로 아버지께 드림
“그들이 새 노래를 불러 이르되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하리로다.”
계시록 5장 9-10절에 가장 중요한 조건은 바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자들을 제물로 하나님께 드렸을 때에 가능한 것이다.
바울은 로마서 15장 16절에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분을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실 만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다. 로마서 11장 25절에도 ‘이방인의 충만한 수’를 말하고 있다. 예배가 채워지고, 기도가 채워지고, 이방인의 충만한 숫자가 채워지면 유대인의 144,000도 채워지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선교의 완성을 말하는 미래 선교이다.
계시록 6장 12-17절은 바로 사도행전 2장 17절-21절의 성취이다. 말세에 선교적 큰 부흥을 일으킬 예언의 말씀이다. “말세에 나의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환난 중의 부흥이다. 이 놀라운 현상이 계시록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므로 계시록은 선교적임을 확신하게 된다. 이런 놀라운 이적과 환난 속에서 구원받는 자들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 계시록의 환난이 전 3년 반 안에 있고, 후 3년 반인 42개월 혹은 1,260일이 아직 시작되지 않은 것은 한없이 크신 아버지의 구원을 향한 자비하신 넓은 마음일 것이다.
다섯 번째의 천사가 나팔을 불자 더 힘든 환난이 일어난다. 그러나 9장 20절과 21절에 보면 “이 재앙에 죽지 않고 남은 사람들은 손으로 행한 일을 회개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여러 귀신과 또는 보거나 듣거나 다니거나 하지 못하는 금, 은, 동과 목석의 우상에게 절하고 또 그 살인과 복술과 음행과 도둑질을 회개하지 아니하더라.” 악한 인간의 모습이다.
회개하여 생명을 얻게 하려고 더 힘든 고난을 주어도 결코 그들은 회개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계속하여 구원의 기회를 주고 있는 것이다. 10장에는 입에는 달고 배속에는 쓴 말씀을 먹게 하고 여전히 선교의 선포를 하는 것이다. 11절에 “그가 내게 말하기를 네가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 수 없는 기회를 주는 것이다.
지성소는 대제사장만이 들어갈 수 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후 휘장이 찢어지고 새롭고 산 길이 생겨났다. 이것이 생명의 길이요, 하나님의 최고의 비밀 장소인 것이다. 하늘나라의 비밀을 다 보여주었다.
결국 이 땅은 두 부류의 사람들로 나누어진다
하나님의 약속의 인치심을 받은 구원받은 성도들과 짐승의 표인 666을 받아 멸망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모습이 나타난다. 이 사건은 이미 로마 시절에 황제에게 절하고 특혜를 받아 상거래의 특권을 받았던 666의 사람들을 의미하는데 마지막 때의 사람들의 모습이 이와 같을 것이다. 엄청난 기회와 회개의 축복의 시간을 주었고 구원의 길을 제시하며 하늘의 모든 것을 보여주었음에도 구원을 등한시하는 악하고 절망적인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세상에는 777의 온전하고 완벽한 축복을 받는 사람들이 있으며, 666의 세상적이고 육적인 사람들로 철저하게 구분되게 되어있다.
마지막의 일곱 대접은 가까이 다가온 시간의 마지막 경고이며 진노의 끝이다. 일곱 말들의 환난과 기회, 일곱 나팔의 더 많은 권고와 하늘의 열림, 그리고 이제 마지막 진노의 일곱 대접을 쏟는다. 그래도 하나님은 여전히 기회를 주신다.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많은 사람을 초청하신다. 기름을 준비 못한 불행한 다섯 처녀도 준비하면 만날 수 있다. 흰 말을 타신 거룩하며 티가 없으신 우리의 주님이 ‘충성과 진실’의 이름으로 불꽃같은 눈으로 세상을 보시며 피 뿌린 옷을 입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를 부르신다. 백 말을 타신 심판 직전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때도 늦지 않았다. 벼랑 앞에서도 우리에게 희망을 주고 있는 것이다.
피 뿌린 옷을 입은 어린 양 예수님께서 마지막의 생명을 얻을 수 있는 십자가의 진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피 뿌림의 복음을 이해하라. 그 피로 죄 사함을 받으라! 새 하늘과 새 땅을 다 보여주셨다. 20장의 천년 왕국의 도래와 사탄의 멸망, 그리고 백 보좌 심판이 있은 후에 그리워하며 잃어버린 에덴의 회복이 일어나는 복낙원이 시작되는 것이다. 21장의 축복을 보라!
에덴동산의 타락과 잃어버린 실낙원을 얻기 위한 인간의 모든 노력은 결국 넓은 길, 폐망의 길이었다. 그리하여 잃어버린 어둠의 생활 가운데 하나님은 아브라함으로 새 가족을 만들어 가셨다. 아담의 가족은 결국 사망의 운명을 벗어나지 못하고 “정녕 죽으리라.”의 저주 가운데 운명 지어져 버렸다. 그러나 사랑의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새로운 가족을 만들어 가셨다. 이것이 바로 첫 크리스마스라고 불리우는 창세기 3장 15절의 복음이었다. 이스라엘을 제사장 나라로 선택하여 모든 만방에 여호와 하나님을 알리는 선교사적 나라로 삼았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온갖 배반과 불신앙 가운데서 고통과 고난의 세월을 보내다 주 후 70년 디도 장군에 의해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는 완벽한 패망의 나라가 되었다. 그리고 1948년 5월 14일, 하나님의 은혜의 약속으로 나라를 찾게 되는 이적이 일어났다. 그리스도를 믿는 이방인들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복음의 비밀을 가지고 온 세상에 나가 복음을 전하는 이방인 선교의 결과로 마태복음 24장 14절의 성취를 위해 생명을 바치며 복음의 씨앗을 뿌렸다. 이 약속대로 이제 선교의 완성으로 이어질 미래의 선교의 장에 우리가 서 있게 되었다.
19세기의 위대한 선교의 세기를 보내고 더 위대한 20세기에는 미전도 부족의 남은 사역을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21세기에 들어서 마태복음 24장 14절이 이루어지는 날을 눈앞에 바라본다. 가장 위대한 미래 선교의 완성인 7년 대 추수기의 환난기를 믿음으로 기다려야 한다. 계시록의 선교적 예언은 이제 성취되어 가고 있다. 마지막의 추수는 22장 17절에 있다. ‘선교적 강한 부르심’을 더 확신하며 영혼과 육신이 선교적 삶을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