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의 끝을 아는 사람들 / 이수현 선교사 (컴미션 미국 본부)

우리 모두는 인생의 여정 속에서 각자에게 주어진 광야를 걷고 있지만, 2023년 컴미션 미국 본부와 킹살렘 훈련원은 그 어느 해보다 고독한 광야를 경험했습니다. 그 이유는 공동체 식구들이 하나둘 떠나갔기 때문인데, 정민경 선교사님은 지난 8년의 본부사역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모험을 떠났고, 조현민 선교사님은 코소보로 파송을 받게 되었으며, 이동선 전도사님은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쫓아 한국으로 이주하게 되었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본부와 훈련원에는 저희 가정과 이재환&이순애 선교사님이남게 되었고 저희 앞에는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광야의 새로운 챕터가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육아라는 작은 웅덩이

2022년 11월, 저희 가정에 셋째 소람이가 태어났습니다. 아들 둘을 주신 뒤에 얻은 딸이라 얼마나 기뻤던지 세상이 아름답게만보였습니다. 하지만 산후조리를 도와주셨던 장모님이 한국으로 돌아가시자 저희 부부는 육아라는 현실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설상가상으로 가족 모두 코로나바이러스에 걸린채 맞이한 2023년 새해는 희망찼다기보다는 사망의 골짜기에 더 가까웠습니다.솔직히 시편 23편에 다윗이 경험한 골짜기에 비하면 저희 부부가 겪은 어려움은 자녀를 둔 모든 부모가 경험하는 작은 웅덩이에불과하겠지만, 저희 부부에겐 그 작은 웅덩이도 깊은 골짜기처럼 느껴졌습니다. 제 마음속에는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다는 다윗의 멋진 고백 대신 ‘하나님 나 죽어요!’라는 비명소리가 메아리쳤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머리로는 알았지만육신은 피곤하고 할 일은 쌓여있으니 감사대신 비명이 먼저 나오는 것이 현실이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해결해 준다는 말이 있듯이 버티고 버티다 보니 소람이는 무럭무럭 잘 자라갔고, 저희 부부는 점점 일상을 회복하여 사람다운 생활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소람이의 두 오빠들 역시 동생을 돌보아 주는 부모의 든든한 조력자로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시댁 식구들과 본부를방문한 컴미션 식구들의 도움을 받으며 때때로 쉴만한 물가로 인도함 받는 시간도 있었습니다.

하늘에서 내리는 만나와 메추라기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아이들처럼 저의 신앙도 날마다 성숙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2022년 12월 본부에 하자라족 난민이 입소하면서 시작된 난민 사역은 분명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역이었지만, 저에게는 연단의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특히 4월에 입소한 후세이니 아저씨와 9살된 아들 메시하를 돌보는 일은 만나와 메추라기를 공급하는 작업과 비슷했습니다. 처음에는 제안에 넘치는 사랑과 긍휼함 혹은 오지랖으로 축구를 좋아하는 메시하를 위해 축구화도 사주고 본부 근처에 축구 리그부터 초등학교 등록까지 전반적인 미국 정착을 도왔습니다. 물론 난민 사역에 대한 지혜가 부족했던 탓도 있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수준(?)이 높아지는 아저씨의 요구 사항들은 저를 지치게 만들었습니다. 저에게는 마치 만나로는 만족 못하고 메추라기를 요구하는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느껴지는 난민 사역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투덜거림이 제 안에 생겼습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니 밑 빠진 독에 물을 채울 수 있는 분은 하나님 한분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내 의지와 힘으로는 안 된다는 간단한 사실을 인정하자 비로소 하늘에서 내리는 만나를 감사함으로 주울 수 있었고, 난민 친구들을 대하는 저의 마음도 자유함을 얻었습니다.

광야의 걸음걸이

난민 사역과 더불어 2023년 본부 사역의 가장 큰 화두는 6년 만에 한국에서 열리는 인터컨퍼런스였습니다. 컴미션과 함께M2414의 성취를 갈망하는 커머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잔치를 일선에서 준비하는 것은 즐겁고 영광된 일임과 동시에 부담스러운 작업이기도 했습니다. 컨퍼런스가 끝나고 지난 8개월간 진행된 준비 과정을 냉정하게 되돌아보니 아쉬운 점이 한둘이 아닙니다. 본부 사역자로서 미국, 한국, 호주, 프랑스 대표님들과 어깨를 나란히하고 준비하다 보니 어쩔 때는 예수님을 등에 태운 나귀새끼처럼 제 자신이 대단한 존재가 되었다는 착각 속에 빠져 우쭐됐던 것도 같고 또 어쩔 때는 사울처럼 열심을 가장한 욕심으로컨퍼런스를 통해 이루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을 막아서기도 했었던 것 같습니다.

특히 여름 사역 시즌을 맞이하여 한창 분주했던 5월, 저는 위궤양으로 추측되는 병으로 인해 모든 업무를 내려놓고 강제 휴식에들어가게 되었습니다. 해야 할 일이 태산인데 가만히 누워있자니 마음이 조급해져 스마트폰으로 업무를 하는 제 모습 속에서 불현듯 작년 이맘때 무거운 짐을 혼자서 옮기다 허리를 다쳤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1년이 지나도록 저는 여전히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나 혼자만 일한다’라는 마인드로 본부 사역을 감당하고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저를 질병을 통해 멈춰세우시고 하나님과 함께 걷는 걸음걸이를 다시 시작할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몸을 회복하고 업무에 복귀한 저는 하나님의 템포에 제 자신을 맞추는 것에 집중했습니다. 여호수아처럼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않도록 균형을 잡는 것도 중요했지만, 저의 경우 하나님보다 앞서가지 않도록 조급함을 내려놓는 것이 가장 필요했습니다. 인터컨퍼런스 준비의 방향성도 잘 짜여진 프로그램보다 하나님의 임재를 구하는 예배에 몰두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작년부터 저희부부가 시도했던 다양한 무릎 선교 콘텐츠의 노하우를 살려 컨퍼런스를 앞두고 30일 동안 진행했던 카운트다운 기도를 통해 컨퍼런스에 이루어질 하나님의 뜻을 보다 확실하게 붙잡고 기대하게 되었습니다. 

모하비 광야의 두 사람

킹살렘 농장 훈련원의 이재환&이순애 선교사님은 해마다 노동 공동체를 이루어 대추를 수확합니다. 올해는 장기로 훈련원에 머물며 추수 시즌을 함께할 공동체 식구가 없어서 대부분의 노동을 이재환&이순애 선교사님께서 감당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경험해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8월부터 시작되는 추수 시즌은 말 그대로 죽도록 고생하는 시간입니다. 거기에 야속하게도 유난히 변덕스러웠던 날씨와 물관리의 어려움까지 더해지면서 역대급으로 혹독한 추수 시즌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상황이 이렇자 이순애 선교사님은 6년 만에 열리는 인터컨퍼런스 참석을 일찍이 포기하고 훈련원을 지키기로 결정하셨습니다.게다가 그동안 열심히 일해서 얻은 대추 수익금을 컨퍼런스에 참석하는 현장 선교사님들의 항공료 지원 명목으로 사용하라고 말씀하시는 모습은 쿨하다 못해 춥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올해 어떤 장로님으로부터 이재환 선교사가 성도들의 노동력을 착취하여수익을 얻고 있다는 얘기가 들려 왔습니다. 저는 당사자가 아닌데도 얼마나 화가나고 억울하든지 당장 그 장로님을 찾아가 따지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본인이 무보수로 일하고 있으니 아주 틀린 말은 아니라고 하시며 허허 웃어넘기시는 이재환 선교사님의모습을 보며 세상의 소리보다 하나님께 집중하는 두 분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이 땅에 임할 하나님 나라

이 글은 지난 인터컨퍼런스에서 선물로 받은 박신일 국제 이사장님의 저서 ‘평생의 순례자’를 읽으며 작성하였습니다. 박신일 목사님의 말씀처럼 광야에는 수많은 말들이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 말들을 이겨야 합니다. 광야의 여정은 산책길이 아니라좁은 길입니다. 요행을 바라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만을 구하는 곳입니다. 세상의 수많은 말들을 뒤로한 채 하나님과 동행하기로 작정하는 결단의 장소입니다. 우리 모두는 광야의 끝을 알고 있다고 믿습니다. 하나님의 나라! 죽어서 가는 하나님 나라가아니라, 이 땅에 임할 하나님의 나라! 천로역정을 거쳐 들어가는 하늘나라가 아니라 이 땅에 회복될 하나님의 나라! 2024년에도선교를 통해 다시 오실 주님을 믿음으로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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